그때 만났던 여자친구(소진이라 부르겠다)는 계속 고시공부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준희누나의 색기에 빠져 소진이는
뒷전이었다. 힘들다며 나에게 기대던 소진이와의 감정낭비로 나의
마음은 점점 준희누나 쪽으로 기울었고, 결국 소진이와 헤어졌다.
사실 그 무렵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군대까지 기다려주며 4년
하고도 3개월을 사귀던 의리있는 여자.. 마침 100일 휴가날에 맞춰
찾아온 그 유명한 태풍 루사도 뚫고 날 보겠다며 진해까지 내려와
부모님과 함께 신병대로 찾아왔던 그 여자..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난 개만도 못한 짓을 그녀에게 해버렸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헤어
지던 날에 어떤 말을 했는지, 그건 어디였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
는다. 단지 기억나는 것은 아이처럼 왜나며 목놓아 울던 소진이의
눈물범벅인 그 얼굴뿐이다.
아무튼 소진이와 나는 헤어졌고, 대략 6개월간 지속된 양다리는 끝
이 났다. 나는 복학했지만 군대 전과 마찬가지로 와우라는 게임에
인생을 전세준 듯 밤새 게임을 했고 최소한의 학점을 위한 공부만
하며 지냈던 것 같다.
누난 몰랐던 양다리가 여친과 헤어짐으로써 끝이 났고 누나만을
만나던 나날이었다. 우린 여행도 참 많이 갔다. 춘천을 좋아하던
누나... 그냥 주말에 닭갈비 먹으러 가자며 기차타고 춘천도 자주
갔었고 속초였던가, 양미리 구이라는 것도 처음 먹어보고. 노오란
티에 남색 반바지 커플로 입고서 산정호수 펜션가서 우와우와 좋아
하기도 하고.. 참 추억도 많고 사진도 많다.
난 누나를 정말 사랑했고 누나의 나이도 있으니 결혼할지도 모르겠
다는 생각도 했었다. 우린 나이 차이는 났지만 몸과 마음이 아주
잘 맞았고, 심지어 취미도 비슷했다. 나는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
했고 누나는 직업이 만화관련 쪽이었다. 같이 온라인으로 그림그릴
수 있는 프로그램(오픈캔버스였던가..)도 있어서 반반 나누어 그림
도 그리고... 생각해보면 끝이 없을만큼 많은 추억이 있었네..
아무튼 결혼까지도 생각했었지만 또 반면은 부담되는 부분도 있었
다. 취직하게 되면 5년 선배 와이프도 누나보다 나이가 적을거다.
또 암만 누나가 동안이지만 나보다 5년 앞서 늙어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특히 동안에 가려진 웃을때 생긴 입가 주름이 아주 가까이
보는 나에겐 점점 눈에 보이면 그런 생각이 더 들었다.
한번은 우리 엄마를 만난적이 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사귄 여자를
다 만나봤다고 할 수 있고 매번 딸처럼 대하고 밥도 사주면서 이야
기하는 것을 즐겁게 생각했다. 그런데 누나가 5살 연상이라는 것을
알기에 불편해 한다는 것이 대번에 보였었다. 아무리 말 놓으라고
내가 이야길해도, 엄마는 뒤돌아서 헤어질때까지 존대를 했었다.
또 당시 나는 대학원을 가고 싶어했기 때문에 졸업시기가 학부보다
더 늦어질 것이고 그러면 누나 또한 결혼시기가 너무 늦어지는 점
또한 나에겐 고민이었다.
사실, 모든 상기의 것들이 내 자신을 위한 합리화였지 싶다.
나는 누나를 약 1년간 만나면서 저런 고민에 힘들었지만 그만큼
후회하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해 사랑했다. 많은 추억을 쌓고
서로 좋은 말만 하려 했다. 우린 심지어 단 한번도 싸우지 않았다.
너무 사랑하는 누나...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했고
장학금까지 받았다.
그러나 난 정말 개같은 이기심을 가진 남자다. 고민은 잊혀지긴 커
녕 점점 더 심해졌고, 어떨땐 누나가 미안하지만 짐같이 느껴지기
까지 했다. 누나는 내 고민을 알았는지 자기는 평생 결혼할 필요
없고 너한테 결혼하잔 소리도 절대 안할거니까 제발 부담가지지
말라고 했지만, 그런 말도 소용없었다.
그리고 그 시기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 애가 내 인생으로 들어온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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