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다녀온 사람들은 알다시피 원래 군대에서는 밥을 굶으면 안되게 되어있음.
식수인원이 맞춰져 있어서 음식이 남으면 안되거든. 짬이 많이 남으니까.
여튼 뭐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다들 밥을 먹어야함. 실제론 밥 안먹고 px를 가서 냉동을 돌려쳐먹었고, 어지간하면 그런 건 눈감아주더라도 '원칙적'으로는.
뭐 하여간 그런데, 우리 대대는 취사병이 4명이었다.
취사병 지원가봤으면 알겠지만 이새끼들 땡보도 뭣도 아니야. 오히려 존나 개불쌍한 새끼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남들 일어나는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야 되고, 싸지방도 거의 못가고 아주 지랄맞음.
훈련이나 근무빠지느니 어쩌니 하는데 사실 어지간한 훈련은 다 참여하는데다가(알잖아. 화생방 탄 떨어지고 있다고 방독면쓰고 밥짓게하는 개병신 같은 짓거리.... 그거 진짜 왜할까) 훈련을 안하더라도 어차피 취사지원용 음식 만들어야되지
뭔 행사 있을때마다 아주 개같은 짓을 다해야함. 대대원이 먹을 김밥을 네명이서 다 쳐싼다거나 뭐 그딴것들....
돌아와서 이런 연유로 우리 대대는 취사병끼리는 그렇게까지 짬차이 가지고 지랄하는 분위기는 없었어.
뭐 다른 이유로는 중대별로 2명씩 오는거라 얘들끼린 아저씨니까 갈구기 애매하다거나 뭐 그런 사소한 이유가 있었지만 하여간 좀 프리한 분위기였음
그래도 내가 부대에서 일병 달때까진 우리쪽 중대 병장이 취사병 왕고였고, 그만큼의 대우는 걔들끼리도 해줬어. 그러니까 이양반 있을때까지는 뻘짓은 거의 안했음
근데 어느날 존나 끝내주는 뻘짓을 터트렸다.
그 당시는 한참 간부들도 병사 괴롭히지 말기 뭐 이런 공문이 내려오던 때였고,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 대대장은 취사장에서 밥먹는 경우가 많았어. 뭐 좀 빠진 대대장은 걍 따로먹는 거 알잖음. 그치만 이양반은 그냥 따로 차리지도 않고 알아서 그냥 퍼가서 먹는 그런 스탈이었음.
간부용 반찬 퍼기는 곳은 따로 운영했지만, 애들이 따로 더 맛있게 만들겠답시고 지랄한 게 아니라 한꺼번에 만든 것 중 조금 덜어 퍼둔 그릇에 있는 걸 자기들이 가져가는 식이었다. 뭐 딴부댄 내가 안가봐서 잘 모르겠다만, 취사병이 다 챙겨주는 곳도 많다매.
여튼 당연히 대대장이 이러먼 그 아래는 다 그럴 수밖에 없는 법이라, 우리는 식사시간에 간부들을 되게 자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간부 식당이 뭐 따로있는게 아니라 식탁만 원형식탁 따로 좀 멀리 두고서 그냥 그대로 먹었어. 시설이 좋은 곳이 아니었거든. 아직 신형막사도 안들어오던 곳이었으니까.
이런 분위기라 말년 병장들도 저녁은 쌩까도 점심은 거의 100퍼센트 짬을 쳐먹었다. 간부들도 짬쳐먹는데 병장들 딴거 쳐먹는 꼴을 봐줄리가 없는 거 너도 알고 나도 알잖아. 뭐 그래도 다들 병신같은거 먹으니까 불만은 딱히 없었어.
근데.... 아까 말한 그 취사왕고가 전역한 후, 중대간 취사병 밸런스가 깨져서 a중대 1명, b중대 3명 식으로 취사병이 섞이고, 그놈들 모두가 일병인 상황이 도래했다.
동기제 막 시행됐을 때 분위기를 기억하는 놈들은 알겠지만, 이렇게 고만고만한 애들끼리 모이면 사고가 터지게 마련임.
그리고 우리도 터졌다.
그건 여느 떄처럼 대대장까지 내려와서 취사장으로 내려와서 똥국을 아무소리 없이 간부들과 같이 먹던 어느날이었어. 걍 평상시의 나날이었지.
그런데.... 그날은 분위기가 이상했어. 보통 취사병은 밥때에 같이 밥을 먹지 않았어. 우리부대는 취사병이 배식까지 했었거든. 그래서 보통 식사는 조금 늦게 했었어.
그런데 오늘은 대대장이 일찍 밥을 먹으러 내려오는 바람에(...) 다들 밥을 빨리 먹는, 그래. 헬조선 특유의 병신같은 상황이라 얘들도 밥을 일찍먹을 수 있는 상황이 오고말았는데.
그때 이놈들이 사고를 쳤다.
그날 메뉴가 뭔지 기억은 나지 않아. 똥국이었던 건 확실한데 다른건 말이지. 아마 존나게 맛이 없는 거였겠지. 맛있는 반찬이 있겠냐만, 거 그래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반찬은 2년동안 군생활 하면 싫어도 생기잖아. 그런데 전혀 기억이 안나는 걸보면, 그날 반찬은 분명 존나게 맛없는 거였을 거다.
그런데 이게 왠일?
배식을 끝낸 취사병들이 갑자기 이상한 짓을 시작한 거야.
다들 식판에 밥과 똥국을 뜨고서 인상쓰면서 먹고 있는데, 이새끼들 테이블엔 어라? 만두가 올려져 있네?
그래. 만두였어.
식판도 없이. 그대로 만두 한 팩을 통째로 전자렌지에 돌린 걸 거기서 뜯어서 쳐먹기 시작한 거야.
우리 부대 취사장엔 전자렌지가 두 대가 있었어. 간부 외엔 쓰지 못하는 애물단지 같은 물건이었지만, 있긴 했었단 말이지. 그런데 놈들은 거기에 만두를 쳐넣고, 당당히 쳐먹기 시작했어.
대대장, 중대장, 행보관, 심지어 주임원사까지 똥국을 쳐먹고 있는 바로 그 장소에서.
그것도 대대장과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서.
- 그리고 취사병은 멸망했다.
다 먹을 때까진 괜찮았어. 대대장은 대충 먹고 나가더군. 우리도 뭐지 저거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고서 그냥 갔어. 우린 a중대라서 취사병 세명이 아저씨라 그냥 별 말 안하고 살았거든.
근데 점심 시간 지나고 일과시간 얼마 안남았을 때쯤이던가?
갑자기 행보관이 분대장들을 다 모으더라? 그리고 얼마 안 지나서 취사병 있는 분대장만 남고 다 돌아왔는데 분대장들이 존나게 쪼개는 거야.
뭔가 해서 물어보니까 씨발 ㅋㅋㅋㅋㅋ 대대장 개빡쳤다고. 요즘 애들은 취사장에서 정해진 음식 외에 다른 거 섭취하게 되어있냐고 나중에 올라가서 존나게 화냈다고 길길이 날뛰었다는 거야.
거 알잖아. 간부들에서 병사로 튀는 내리갈굼도 있는거. 그걸 대대장이 양 중대장 데려다놓고 지랄하니까 그게 분대장한테 튄거지.
존나 갈구라고.
당연히 분대장도 개 빡돌고, 말년들도 갑자기 생각해보니까 빡쳐서 우리 중대 취사병 불러서 개처럼 갈궜지. 니새끼가 뭔데 오늘 메뉴 거르고 만두나 까쳐먹고 있냐고.
당연히 다른 중대도 다 튀어올라오게 해서 존나게 갈구고.
근데 씨발 대대장이 빡치니까 그걸로 안끝나더라. 집에 잘가던 대대장이 오늘은 안가는거야 ㅋㅋㅋㅋ 저녁까지 내려와서 밥 먹는데, 분위기 좆같으니까 다시 애들 배식 끝내고 일반 식단 먹는데, 갑자기 찾아가서 이러더라
만두는 이제 안 남았냐?
와 존나 무서웠음 진짜.
취사병 애들 죄다 얼굴 창백해져서 쿨럭거리고. 대대장은 그러고서 다시 올라갔는데, 나중에 중대장들이 알아서 걔들 군장돌리더라 ㅋㅋㅋㅋ
나중에 취사병한테 대체 왜 그랬냐 물어봤더니 그 만두가 며칠 전에 원래 써야했던 만둔데 어쩌다보니까 남은 걸 모르고 못 넣어서 폐기하기 아까우니까 먹었다나.
생각해보면 뭐 유통기한 다가와서 먹을 수 있는 부분이긴 한데 분위기 파악 존나 못하는 애들이었다.
그 뒤로 얘네는 밥맛 없다고 대대장 직속으로 존나게 갈굼 당해서 몇 달동안 개처럼 고생한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진짜 군댄 신기한 곳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