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벌써 15년 이상 된 기억이다.
이제 다 삭아버렸지만 아직 강렬했던 그 순간순간은 기억에 남는다.
나는 시골에서 살았다.
마을에 집 몇체 없고, 사람도 않오고 가장 가까운 수퍼마켓이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많았다.
나랑 1~2살 차이나는 아이들이 많았다.
밤에는 마을 중앙을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홀로 서있는 가로등 아래에 모두 모여 놀았다.
낮엔.
나이대가 비슷한 몇몇 남자애들끼리
여자애들 끼리 따로 놀았다.
내가 1살때 부터 7살 쯔음까지 같이 지냈던 아이가 있었다.
동갑에 남자아이였고, 어린시절 작았던 나와 다르게 덩치도 좀 있었던 그런 아이었다.
같이 산에 올라가 나무막대기를 주워서, 누가 더 좋은 막대기인지 자랑하고, 둘이서 같이 만화영화를 보던 그런 친구였다.
가장 친하진 않았지만, 같이 오래 있었기에 어린 나이에도 서로 믿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아이의 신뢰란 결국 '같이 못된짓을 해도 괜찮은 친구' 정도 였던거 같다.
나와 그 친구는 나름 모험이라 여기며 온 동내를 돌아다니다
시멘트로 대충 포장된 도로 위에 놓여진 커다란 하수도관 더미를 찾아냈다.
무릎을 꿇으면 들어 갈 수 있는 크기의 하수도관은 우리에게 너무나 매력적인 놀이감이었고
그런 하수도관이 3~4개가 쌓여져 있는 그곳은 보물섬과 같았다.
그리고 나에겐 처음으로 가져본 자신만의 공간이었다.
원형의 하수도관을 나란히 놓으면 사이에 공간이 생긴다.
그때 나는 그 비좁은 사이에 누워있는게 너무 편안했다.
그건 내 친구도 마찬가지 였었다.
우리 둘은 그 사이를 차지하기 위해 매일 시시껄렁하게 다퉜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우리 둘은 '두명이 같이 누워있으면 되잖아?' 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내 흑역사가 시작된다.
공간은 한정되어있다.
그 곳에 두명이 같이 누울려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가장 효율적인 자세를 취해서 둘이지만 최대한의 편안함을 느끼려 할것이다.
순수했던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69자세를 취했다.
그 후 대체 왜 자지를 빨아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건 내가 바지를 내려주고 꼬추를 빨아줬다.
바지를 내렸을 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조그만했다.
그때 나의 작은 오른손의 새끼손가락 정도의 크기었다.
하지만 내꺼보다 컸다.
이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내꺼보다 컸고, 나는 그게 불만이었는지 신기했는지
대체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걸 살짝 입술로 포갰다.
그리고 혀로 갈무리해 내 어금니로 끌어당겨 살짝 살짝 마사지해줬다.
계속, 마사지해줬다.
혀 끝으로 이리저리 포피를 핥았다.
아 시발 여기까지하자. 이러다 나중에 똥까시 까지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