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학번 아재다. 올해 36살이고 고추 약먹고 세운다.
이 이야기는 디아2부터 해야할 거 같다.
대학교 2학년때 디아2가 나왔고 신촌엔 이름부터 디아블로라는
PC방이라는 생길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조선 털보 백정새끼라도 된 냥 밤새도록 소새끼들 잡고
아이템 줏어먹는게 대학 수업보다 의미있었던 시간이었다.
아무튼 그때 길드를 하나 들었는데 내가 거의 막내였던거
같고, 그래도 나이 차이 별로 없이 비슷한 또래끼리 정모도
몇 번하고 그랬던거 같다.
경상도 시골촌놈이라 서울에서 취미 비슷한 아는 사람도
생기고 하니 난 좋다고 따르고 했었다.
그 중에 준희라는 5살 연상 누나가 있었는데 다들 1~2시면
직장때문에 들어가는 반면 누나와 난 거의 밤새게임을 하다
보니 이것저것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고 서로 장난스레
가볍게 놀리는 성격이라 갈구기도 하며 이래저래 친했다.
3번째 정모였던가 내가 간다고 하니 누나도 처음으로 나와
보겠다 하더라. 친한 누나지만 게임하는 여자가 뭐 외모야 그러려니
평소에 생각하던 나는 별 기대없이 그때 보자고
했다. 정모날 모였는데 전부 평소처럼 시커먼 자지들뿐이라
늦는가보다 하고 막내라 고기 존나 굽고 있었는데, 저기서
어떤 여자가 이쪽으로 오더라.
난 그 여자가 그 누나라곤 절대 생각 못했다. 그 시절 21살인
나로선 26살 여자라면 상폐급이라 생각했고, 또 그렇게
밤새 소새끼잡는 여자는(물론 나도 함께였지만) 당연히
메갈돼지 외모 정도아니겠냐는게 내 추측이었던거다.
그러나 얼굴을 목도리로 반쯤 가리고 있던 누나가 이쪽으로
와서 목도리를 풀러 내리자 길드 형들 중 몇몇은 갑자기
일어서서 환영하기 시작했고, 몇명은 오줌도 지리는듯했다.
그 누나는 얼굴이 매우 작고 하얫고 또 어려보였다. 당시
내가 아는 26살 얼굴이 아닌, 거의 고딩같은 풋풋함까지
느껴질정도였다. 연예인으로 따지면 김민정을 조금 닮았고
하여간 "와 이기 서울여자가"라는 생각이 들었던것 같다.
3테이블 정도 붙은 자리였는데 나와 누나는 서로 끝자리였고
난 괜히 어색해서 딱히 아는체도 못하고 고기굽고 있고 누나도
xx이가 누구냐고 멀리서 물어보더니 힐끔 쳐다보고나선 신경
안쓰고 잘 먹고 놀더라. 눈도 컸고 그 눈빛이 아직도 선명하다.
2차 맥주먹으러 가려는데 누난 집에 간다고 했다. 그때 배웅도
아니고 그냥 다같이 서서 잠시 술집찾는다고 기다리면서 니가
xx구나 이미지랑 좀 다르네.. 뭐 이딴 소리 몇 마디하고 누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내심 너무 아쉬웠던 것 같다.
그날 누나 전화번호를 받아서 통화나 문자는 간간이 했지만
직접 만난 적이 없이 02년도에 난 군대를 갔다. 거기서도 가끔
누나와 연락은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와 누나는 만나거나
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 사이에 벌어질 행복하고 또 슬픈 일들에 대해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