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공고 다니는 고3 임.
10년을 넘게 해온 운동을 질려서 때려치고 먹고 놀던 시절이라 살도 많이 불어서 자존심도 많이 떨어졌을 때였음.
운동만 했으니 대가리에 들어있는건 없고 그렇다고 될대로 되라하고
인생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최대한 맞춰서 갈 수 있는 고등학교에 간다고 한게 지금 고등학교였음.
남고였다가 공학으로 바뀐 학교였는데.
그래도 다른 과들은 공고치고 어느정도 여자가 있는데 우리 과는 특성상 여자가 들어올 수가 없는 과였음
그런 우리 과에도 여자가 딱 한명 있었는데 다들 눈치 챘겠지만
짝사랑하는 애가 같은 과에 딱 하나 있는 여자애임
그동안 살아오면서 딱히 얼빠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고등학교 예비소집일 날 얼핏 보고 ‘어? 여자다’ 했었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보자마자 딱 알았다.
'아, 나 존나 심각한 얼빠구나'
아마 내 이상형을 말해보라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그 애라고 말 할 수 있을 듯.
하여튼 고등학교 막 올라와서 학기 초반에 다가가고 싶었는데 다가갈 기회가 그렇게 많지가 않았음.
앞서 말한 대로 자존심은 떨어질 만큼 떨어져 있었고
운동하면서 여자랑 말 섞어볼 기회도 별로 없어서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진짜 하나도 몰랐었거든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을 그냥 그렇게 보내버렸다.
진짜 지금 생각하면 존나 병신 같았지.
어떻게든 그때 연락을 했어야 했는데
그런거 하나도 모르고 어버버하고 있으니까
그 애는 다른 애들이랑 친해져버렸음
하필 친해진 것도 흔히 양아치라고 불리는 애들이랑 친해져버려서 내가 끼어들어갈 틈이 없었음
지금 친구랑 그 때 애기 하면 병신이라고 아직도 놀림 받는다.
심지어 같이 고등학교에 올라온 중학교 친구도 없어서
고등학교 2학년 올라와서 그나마 안면 튼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기 시작했음
그러다가 그 애랑 겨우 안면 틀 기회가 찾아왔었지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그때 당시 시험 끝나고 뒤풀이 한다고 친구들 끼리 늦게 까지 놀다가
오후 11시쯤 되서 집에 돌아가고 있었음
나름 번화가(?) 외곽 빌라들 있는 쪽을 지나가고 있었을 때였는데
남자랑 여자가 싸우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괜히 무슨 일 있나 싶어서 구경이나 하자 하는 마음으로 소리나는 쪽으로 걸어갔음
ㅏ자로 생긴 골목에서 싸우고 있었는데
몸 숨기고 슬쩍 보니까 여자 하나랑 남자 둘이서 싸우더라고
오오! 하고 괜히 흥분해서 조용히 엿듣고 있었는데
둘이 연인인 것 같던데 남자가 잘못을 했더라고
여자는 화나서 막 쏘아 붙이고 남자는 그냥 조용히 듣고 있었음
근데 계속 듣고 있다 보니까 여자 목소리가 어디서 많이 듣던 거 같은거야
'흠... 어디서 들었더라'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짝' 소리가 나더라
놀라서 돌아보니까 여자애는 뺨 잡고 있고 남자애는 한 번 더 때리려는지 손을 들고 있는거야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바로 튀어나갔지
한 다섯 발자국?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가면서 어디에 서야 될까 고민하다가 여자 앞에 섰음
무슨 말을 해야 될지 생각이 안 나서 순간 멍해졌었는데 다행히 먼저 말을 꺼내주더라고
"제 여자친구니까 관심 가지지 마시고 그냥 갈 길 가시죠"
너무 당당해서 진짜로 그냥 갈 뻔 했다.
"아무리 여자친구라도 폭력은 안되는겁니다"
물론 진짜 가지는 않았고 바른 소리 좀 해줬음
그랬더니 우리의 남자친구께서 나한테도 손을 들더라고
슬쩍 뒤돌아서 여자친구 되는 사람을 봤지
언제 잡은지도 모르게 내 옷깃을 잡고 바들바들 떨고 있더라고
(여자가 아무리 기세게 나와도 남자가 윽박지르고 때리면 어쩔 수 없이 떨게 되있다. 그니까 너네들은 그러지마. 알았지?)
옆에 있던 남자 친구도 가세해서 한마디 거들더라.
"험한 꼴 보기 싫으면 그냥 가시죠"
많이 쳐줘도 운동 조금 한 중학생 정도 실력 되는 것 같아 보이는 애들 둘이 말하는 거 듣고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 나오더라고
당연히 자존심 센 우리 친구들은 피식 웃는거 보고는 양 옆에서 죽자고 달려들더라고
뒤에서 옷 잡고 있던 손에도 순간 힘이 들어가길래
한숨 한번 푹 내쉬고 선 자리에서 턱에다가 잽 한 번 씩 날려줬음
(이게 진짜로 각도랑 힘만 잘 맞추면 픽 하고 쓰러진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출 되는 게 거짓말이 아님)
근데 진짜 작정하고 칠 수는 없었으니까 살짝 약하게 쳐서 어지럽게만 하고
내 옷 잡고 있는 손 잡고 뒤도 안 돌아보고 튀었다.
근처 공원으로 ㄱ서 숨 좀 고르고 진정 시켜주려고 쳐다봤는데
그래. 그 여자애인거지 나도 그때는 진짜 존나 깜짝 놀랐다니까.
말없이 20초? 정도 그냥 쳐다만 보고 있었나, 겨우겨우 한마디 꺼냈었음
"괜찮아?"
대답은 못하고 눈물만 글썽거리길래 머리 좀 쓰다듬어 줄 생각으로 손을 내밀었는데 스윽 안기더라
?!?!?!
안겨서 울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밀어내기도 뭐하고 뭐라 말하기도 뭐하고 그래서 그냥 안아줬다. 토닥토닥
한 3분 정도 토닥토닥 해주고 있었는데 스윽 빠져나오더라고
"고마워, 도와줘서"
고등학교 올라와서 처음으로 나눠보는 대화였음
"괜찮아?"
괜찮기는 뭐가 괜찮겠냐
"완전히... 틀어진거야?“
힘들겠지.
도와주고 싶다고 말 하고 싶었지만 거절당하는 게 무서워서 말을 못 꺼내고 있었는데
"힘들 것 같다... 그치?"
입은 웃으면서 눈은 울면서 말하더라.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입을 열려고 했는데
”나 좀 도와줄래?“
먼저 들어왔고, 그래서 받아줬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