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그늘3
대학3학년 때부터 4학년 졸업할 때까지 있었던 하숙집은 바로 창문을 열면 빵집(고려제과) 주방 창문이였다. 그탓인지는 몰라도 근처 다른 하숙집에 비하여 하숙비가 약간은 저렴했다.
새벽 빵굽는 냄새가 창문만 열어 놓으면 빵집 환풍기에서 나오는 열기와 냄새가 내 하숙방에 가득했다.
아니 닫아 놔도 가득했다.
담배를 피워도, 한달 내내 빨래거리를 쌓아 놓아도 내 하숙방엔 빵굽는 냄새만 가득했다.
지금같으면 하숙집을 당장 옮겼거나 제과점에 환풍기 연통을 만들어라 했겠지만......
내 몸에서는 빵냄새가 1년내내 났다. 내게 빵집의 빵굽는 냄새는 물리적, 화학적, 혹은 사회적으로 영향을 줬다. 쉽게 예를 들면 새벽부터 빵굽는 냄새는 식욕을 불러 일으켰고 즉 배가 고프다 라는 기분이 들게 했다. 하지만 그 냄새가 지속되면 식욕절감 혹은 만성두통으로 이어지는 공해와 고통이 된다. 그리고 이 빵냄새는 내 몸에도 배어있어 처음 나를 보는 사람은 십중팔구 ‘집이 빵집하나?’ 이런 질문을 하기 십상이고, 처음 학교에 갔을 때 친구들은 빵을 찾기위해 내가방을 뺏어 뒤지곤 했다.
하지만 그때 내가 사는 하숙집 학생들은 지독히 낙천적이거나 무신경한 편이거나 해서 그 빵냄새에 이끌려서인지 그 고려제과를 자주가곤했다.
그때는 내가 하숙집 학생들이 순진했고, 순수했다
빵집이 앞에 있으니 빵냄새가 나는게 당연하다 간수했고, 그 냄새가 싫으면 우리가 이사를 가면 다 아닌가 여겼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무한 긍적으로 빵집 사장님과도 친하게 되었다.
생일 파티도 그 빵집에서 하게 되었고, 미팅이나 소개팅도 그 빵집에서 했다 나중에는 친구녀석들을 만날때도 ‘고려로 와라’ 했다.
그 빵집사장님은 우리가 무슨빵을 달라고 하기도 전에 무조건 조그만한 접시에 한두조각의 빵을 무조건 주었다.
급기야는 매일 아침 8시 즈음이면 내방 창문을 아침에 구운 바게트 빵으로 톡톡 창문을 두둘겼다. 내가 잠도 덜깬 눈으로 창문을 열면 아무말없이 내 입에 바게트빵을 넣어 주곤했다.
잠이 깨서 귀찮고, 성가셨지만 그런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는 것은 바게트빵 맛이였다.
겉은 딱딱했지만 속은 부드러웠다. 그래서 바게트빵을 먹을땐 속 하얀 부분으로 겉 딱딱한 부분을 감싸 입에 넣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해서 입천정이 딱딱한 바게트빵에 상처가 날수도 있었다.
막 구웠는데도 겉은 딱딱하고 속은 부드러운 바게트빵이였다.
빵맛은 빵집 사장님의 성격을 닮은 것 같았다. 왜냐하면 빵사장님은 가게의 모든 빵을 우리에게 손님에게 줬다. 지금처럼 1+1도 아니고 겨우 단팥빵 하나만 사도 조그만 모찌라도 하나 줘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였다.
특히나 나에겐 그냥 빵집 앞만 지나가도 불러 가게에 들어오라해서 빵을 쥐워줬다. 하지만 여자사장(형수님이라 부르지 않음)은 빵이 남아서 버릴지언정 절대 그냥 주는 법이 없었다.
아니 몇 만원어치를 사도 절대 단팥빵 하나를 덤으로 주는 법이 없었다. 우리가 빵을 사게되면 형님이 나와서 뒤로 몇 개를 손에 잡히는 데로 주기도 했는데 절대 그냥 모르는척 하지는 않았다. ‘써비스야? 특별히 학생들이니깐 주는 거 알지?’ 했다 그러면 우리는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정말 어렵게 입밖으로 꺼냈다가 곧 후회하곤 했다.
하지만 그 여자 사장의 야박하고 재수없는 행동을 커버하고도 빵집사장님의 아량에 우리는 눈감아 주기로 했다.
다시 바게트빵으로 돌아가면 나는 그 고려제과 빵집에서 바게트빵 맛을 알게되였다. 그래서
어느 빵집에 갔다가 막구운 바게트빵이 있으면 습관적으로 빵을 집어 냄새를 맡게 되지만 그 학창시절이 내음과 맛이 아니라는 걸 알고 다시 내려 놓게 된다.
정말 맛있는 바게트 빵은 커피나 우유나 치즈 랑 같이 먹으면 맛이 없다. 무조건 바게트 빵 하나만 먹어야 한다. 바게트빵의 개똥철학을 그때부터 세우게 되었다. 그 당시 바게트빵을 어떻게 만드는지? 무엇 무엇을 넣었는지를 그 맘씨 놓은 형님에게 물어서 적어 놨어야 했다.
하지만 그 빵집에 여자사장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 했을 때가 전국 어느 대도시나 중소도시나 할 것 없이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빵맛이 하나로 통일 되기 시작 했을 때 였다.
고려제과 건너편에 거대한 프랜차이즈 빵집이 화려한 인테리어와 먹음직스러운 케잌으로 쇼윈도를 무장하고 손님을 끌어 모으면서 형님 가게는 쪼그라들고 있었다.
빵은 맛이 아니라 멋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형님의 빵가게 빵들은 남아서 버리는게 더 많아지게 되었다.
하루에 한번씩 굽던 바게트빵은 이틀에 한번씩 삼일에 한번씩 구워지게 됐고, 그 여자 사장의 목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리게 되었다.
어느날 창문을 통해서 언뜻 그 빵집을 보게 됬었는데 텅비다 시피한 진열 케이스에 딱딱한 바게트빵을 쥔 여자사장이 테이블을 치면서 형님에게 뭐라고 소리치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집 큰딸이 고3이였는데 여자 사장을 닮아 삐쩍마른 아이였다.
가끔 빵집에 나와있는데 절대 인사도 하지 않고, 아는 척도 하지 않아 우리가 ‘밥맛’으로 간주한 아이였다. 그런데 어느날 ‘뒷집으로 놀러와’ 했는데 그날 저녁에 정말 와서 우리가 당황했었다.
그후에 뻑하면 내 하숙방에 놀러와 고스톱을 쳤는데 창문을 꽉 닫고 말소리가 새 나가지 않게 해야 했다.
나는 점당 한 대씩 손목 때리기 고스톱을 치다가 무려 많은 점수차로 이겨서 손목을 때리는 대신에 걔의 입술에 뽀뽀를 하고 말았다.
밤 12시가 넘었는데 고3여학생과 대학교4학년 남학생이 한 방에서 고스톱만 치고 있었다면 더 이상할 터였다.
호랑이는 사슴을 사냥할때나 토끼를 사냥할때나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물론 내가 호랑이는 아니지만 토끼라고 해서 대충 장난으로 하면 않된다.
그때의 생각은 지금과 다름이 없다......못생겻다고...잘생겼다고....뚱뚱하다고....날씬하다고 차별을 해서는 않된다
어차피 똑 같은 여자니깐 말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걔에게 잘해줬다.
그 애는 아빠가 갑갑하다고 했다.
엄마는 아빠에게 우리집도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개업하자고 조른다고 했다. 것도 아니면 건너편 프랜차이즈 빵집 제빵사로 들어가라고 했다.
하지만 빵집사장은 단호 했다.
빵이 돈으로 다 되는 일이냐 라고 했고, 돈만 벌면 되냐고 했다.
공부가 하기 싫다고 하면서 매일밤 독서실 간다고 하면서 내 하숙방에 온 그 빵집딸은 분위기파악을 못하는 것이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하지만 그 애는 점점 내 성적 욕구를 충분히 받아주고도 남을 정도까지 이르게 됬었고......
그해 가을 초저녁 고스톱을 치다가 무려 7번 넘게 해서 더 이상 발기가 않되고 빼낼것이 없게된 새벽, 날이 막 밝아 오는데 갑자기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 애는 들킬까바 창문 바로 밑에 쪼그려 앉았고, 내가 창문을 열자 빵집 형님이 내게 바게트 빵을 주면서 웃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다.....내일부텀 저 건너편 빵 먹어라”
하지만 그애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성기를 입에 물고 서지 않는 성기를 빨고 있었다.
나는 그애의 입에 바게트빵을 물렸다. 그리고 나도 바게트빵을 씹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