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직딩이야. 하도 마음이 갑갑하고 안좋고 해서 3년 사귄 여친이랑 헤어진 얘기 썰 좀 풀게. 이런건 어디 속풀이 게시판에 올려야 할 거 같은데, 그런데는 언니들만 많고 흉들이 없어서 여기에 올려봐.
대학 졸업하고 인턴으로 공기업에 들어 왔어 그때 같은 학교 같은 과 출신이었던 S와 같이 입사를 했었지. 학교 다닐 때는 잘 알지 못했었어. 환경 관련 학과라서 여자가 많기도 했고, 그렇게 튀는 애는 아니었거든.
어쨌거나 대학 동기에 입사 동기로 지내다 보니 급격히 가까워 졌지. 그래도 이성으로의 감정이 있던 것은 아니야. 현실 남매 같은 느낌? 서로 다른 부서에 배치 받아서 일했는데 그래도 한 1,2주에 한번씩 동기 모임 하면서 술 마셨던 듯해. 그런데 S가 배치 받은 부서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보더라고. 전공과 직접 관계가 없는 일이기도 하고 거기 팀장이 워낙 지랄 맞기로 유명해서 ㅎㅎ
언젠가 부터 S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 지더니 하루는 회사를 무단 결근한거야. 다른 대학 친구들도 있었지만,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봤어. 전화도 안 받더라고. 덜컥 겁이 나기도 해서 일과 후에 다른 동기 하나랑 자취방으로 찾아갔어. 밖에서 보니까 불은 켜져 있더라고. 그래서 인터폰을 했더니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받더라. 얘가 아파서 그런가 싶었지. 잠깐 들어가서 얼굴 보자 그랬더니 자다가 일어났고, 집이 어지러워서 오지 말라 그러더라고. 걍 살아 있는 것만 확인하고 돌아 왔어.
다음날 점심시간에 S를 찾아가서 캔커피 하나 건네면서 말을 걸었지. 계속 표정이 안 좋길래, 잠깐 밖에 나가서 바람 쐬며 얘기 하자고 불러 냈어. 옥상에 올라가서 잠시 숨을 고르더니 얘가 갑자기 펑펑 우는거야. 깜짝 놀라서 잠깐 울게 가만 두었어. 휴지 찾아와서 닦으라고 줬더니 그제서야 말을 하더라. “너무 우울하다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고 무기력 하다고. 죽고 싶다고…” 등좀 두드려 주면서 힘내라고 했지. 그런데 회사 일 때문만에 이런건 아니다 싶었어. 솔직하게 말해서 아무래도 공기업이다 보니 업무 강도가 살인적이지는 않아.
이러지 말고 정신과 상담 한번 받아 보는게 어떻겠냐고 했더니, 안그래도 그러려고 했데. 너무 기분이 안 좋고 이상해서 우울증 자가 진단 문항을 풀어 봤더니 100% 우울증으로 나왔더래나. 이 말을 듣는 순간 자기 병을 알고 있으니 한편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날 바로 병원을 가서 진료 받고 약을 1달치나 받아 왔더라고. 병명은 우울증이 맞고. 항우울제를 처방 받았다고 했지. 약을 먹으니 기분이 조금 낫는 듯하다 그러더라구. S가 혹시라도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마음을 졸이며 옆에서 지켜봤네. 웃으라고 옆에서 주접도 많이 떨고 말이지.
여기까지 읽었으면 짐작하겠지? S가 우울증에 걸리고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급속히 친해졌고 연인 사이로 발전해 버렸어. 갓 입사한 인턴들이 사내연애 한다 그러면 욕들어 먹을까봐 조심 스럽게 비밀 연애를 했어. 둘 다 고향 떠나서 자취를 했으니 서로의 자취방을 오가며 마음껏 ㅅㅅ라이프를 즐긴 것은 물론이고 ㅎㅎ S가 우울증을 겪었었기 때문에 걱정을 했었는데 한번 스타트를 끊어 놓으니 지가 먼저 벗고 덤비더라구. ㅋㅋ
사귄지 2년이 넘고, 둘 다 정규직으로 전환도 되고 하니 S가 슬슬 결혼 얘기를 하기 시작하더라. 아직 결혼하기에 어리다고 얘기도 해봤지만 둘이 싸움 한 번 안하고 워낙 잘 지내다 보니까 걍 동거부터 시작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고. 어쨌거나 S도 20대에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눈치고 해서 일단 S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기로 했지.
주말에 ㅇㅇ에 계신 부모님댁에 인사를 드리러 올라 갔지. 포말하게 인사하러 갔다기 보다는 대학 친구집에 놀러가는 기분으로 갔어. 나는 ㅇㅇ에 사는 다른 친구집에 신세 지기로 했고. 드디어 부모님을 뵙는 날, 나는 어디 식당에서 만날 줄 알았는데 자기 집으로 오라는 거야. 무슨 대접을 떡벌어지게 해주시려고 그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머리와 쟈켓에 한껏 신경을 쓰고 찾아 갔지. 물론 손은 과일 박스로 무겁게 했고.
집에 갔더니 S의 오빠와 어머니가 반겨 주셨어. 아버지는 거실 소파에 앉아 계시더라구. 꾸벅 인사를 드리고 거실 소파에 앉았지. S의 아버지는 반갑다고 어눌하게 한 말씀을 하시고는 별 말씀이 없었어. 이때 뭔가 좀 이상하다 싶었지. 그러고 나서 식탁에 모여 앉아 식사를 하는데 아버지 표정이 계속 안 좋더라구. 내가 마음에 안들어서 그러시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옆에서 S의 어머니는 살갑게 이것저것 먹어보라고 권하고 물어보시는데 말이야. 아버지 때문에 내가 초긴장하는게 보이셨나봐. 그러다 사단이 났는데 S의 아버지가 갑자가 횡설수설 하시는거야. S의 오빠가 벌떡 일어나서 아버지를 부축해서 다른 방으로 모셨어.
갑자기 분위기는 싸해졌고, S의 어머니가 한숨을 푹 쉬시더니 먼저 말씀을 꺼내더라고. 저 양반이 조현병이 있다고. 계속 치료를 받고 약을 먹고 있는데 오늘 S 친구가 온다 그래서 흥분한 모양이라고. 크게 놀랐지만 애써 침착한 척하고 밥을 다 먹고 인사하고 돌아왔어. 아버지는 나와서 보지도 못 하시더라구.
친구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면서 둘이 잠깐 얘기를 했어.
S: 많이 놀랬지?
나: 응 조금. 왜 나한테 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