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 남고 나와서 20살에 처음사귄 여자 친구가 너무 감수성이 풍부했음
매일 잠자기 전에 어디서 구해왔는지 항상 카카오톡으로 시 한편을 매일매일 보내주더라.
한 가지 존나 어이없었던 일이 있었는데 엄마가 여자 친구 집으로 문어 한 박스를 보냈음.
그런데 거기서 엄지손가락만한 존나 작은 게 한마리가 붙어왔는데
그 게가 움직이다가 서서히 움직임이 느려지더니 죽었음.
그런데 여자친구가 "얘도 살고 싶었겠지?"
라고 하길래 내가 농담으로 "발악하다 뒤졌겠지 뭐" 이랬음.
그런데 얘가 사람이 왜 이렇게 매정해? 하면서 존나 펑펑움.
어이가 없어서 "니가 싫어하는 돈벌레 새끼도 뒤지면 장례식 치뤄라?" (과장)
라고 맞받아치면서 존나게 싸웠음. 물론 나중에 화해했지만.
그리고 얘가 조용하고 말수도 적어가지고 정적인거 좋아함.
취미가 눕기 좋은 풀숲에 누워가지고 책 한권 다 읽고 맥주 한 캔 삭 마시는 것이 취미임.
그렇게 여자 친구가 좋아하는 책읽기 , 그림보기 , 풀숲에 쳐 누운 다음에 하늘 보면서 하늘에 이름지어주기
, 만약에 부자가 된다면? 만약에 엄마가 죽는다면? 라면서 좋같은 가정 지으면서 놀기 등등
둘이 할 수 있는 정적인 활동은 다 해 봤음.
내가 하도 맞춰주니까 내가 여자 친구가 너무 싫증이 나가지고 헤어질 각을 찾고 있었음.
그런데 도저히 면상 대 면상으로 헤어지자고 말할 수가 없었음. (나도 조금 소심했지 처음이니까)
시적인 표현 같은 거 좋아하는 여자 친구에게 이별의 통보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하던 찰나에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름.
나랑 여자 친구는 평일에 만나지 못하고 매주 토요일 아침 10시에 항상 매일 갔었던 풀숲 앞에서 만났음.
그래서 내가 만약에 둘 중에 한명이 싫증이 나거나 헤어지고 싶다면 휴대폰을 통해서나 얼굴 정면에서 헤어지자는 말하지 않고
항상 모였던 풀숲에 핀 민들레주변의 땅에 이별통보의 편지를 묻고 그 자리에 나오지 않기로 했음.
그 후에는 구차하게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기로 했음.
평소에 서정적이던 여자 친구가 이런 말을 듣고 눈물을 뚝뚝 떨어질 줄 알았는데 그냥 알았다 했음.
그 말을 하고 다음 주 토요일 날 항상 만났던 풀숲에 갔는데 여자 친구가 나오지 않았던 것임.
설마 설마? 하면서 민들레 주변 땅을 개처럼 손으로 퍽퍽 긁어내면서 편지 찾고 있었음.
얼마나 깊게 묻었는지 시발 개미굴도 찾음 ㅋ 그래서 흙과 함께 묻혀진 편지를 찾아 열어봤음.
시가 한 구절 써있었는데 아직도 기억남.
"시간을 주워 담고 싶을 만큼 당신을 사랑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얼척이 없어가지고 전화하려다가
" 저,저기... 야 헤어지는거 아니지??" 이러면서 개 찐따 호로 새끼마냥 말하는 것을 상상하니까
전화를 하지 못했고 그날 피시방 가서 친구랑 스타 했는데 하나도 재미가 없었음.
집에 가서 자려고 누웠는데 여자 친구를 못 만날 생각을 하니까 눈물이 자꾸 났었음.
사실 그 이후에도 토요일마다 만났던 풀숲에 가지는 못했고 그 주변에 슈퍼에서 기웃기웃 거렸는데
역시나 여자 친구는 나오지 않았고, 물론 연락도 오지 않았음.
결론은 내가 싫증이 나서 안온거겠지?
새벽에 갑자기 생각나서 끄적인다.
3줄 요약
1. 감수성 풍부한 여자 친구 만났음
2. 만약 헤어진다면 둘 중에 한명이 풀숲에 편지 묻고 다시는 만나지 말기로 함.
3.내가 그 편지를 보고 눈물 찔찔 흘리고 이별을 받아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