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 부모님 사정으로 세달 정도 시골 외갓집에서 산적이 있다
죄다 밭매고 소키우고 일주일에 한번 과자실은 트럭이 방문하는 그런 촌동네였다
당연히 또래 친구는 아무도 없고 회관 옆집에 아들딸내미가 고등학교 다니면서 가끔 같이 놀아주곤 했다
(나 중학생때 이집 형이 바다에 빠져 죽어서 시체도 못찾고 난리가 났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그렇게 심심하게 지내고 있던 날이었다
하루는 마을사람들이 회관에 모여서 옥수순지 감자인지 쪄먹고 화투치며 놀고있었다
근데 어디선가 크고 검은 개가 나타나서 헥헥거리며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더라
할배중 누군가 '마을에 검은개 들이면 부정탄다'면서 대나무 막대기들고 휘휘 저어서 쫒아냈다
근데 덩치는 산만한게 몸은 삐쩍 마르고 볼살도 축 늘어진채 헥헥거리면서 짖지도 않더라
이게 검은 누렁이(검은데 누렁이라고 불렀다)와 첫만남이었다
그 이후로도 마을 여기저기서 계속 녀석을 보곤 했다. 딱히 사람한테 다가오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람한테 무관심하진 않은게 멀찍이서 쳐다보기만 했다
가끔 눈이 붉게 충혈되서 멀찍이 헥헥대고 사람들을 쳐다보곤 했는데 당연히 마을 사람들이 좋게 볼리 없었다
딱히 피해가 있던 적은 없지만 할배들끼리 언제 날잡아서 저 개 한번 잡아야겠다고 모일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하길 얼마간
결국 사고가 한번 터졌다
그때당시 오리농사? 오리를 이용해서 농사를 짓는거였는데 뭔진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거 하는 할배가 하나 있었는데 검은 누렁이가 그집 오리를 몇마린가 물어 죽인거였다
당연히 할배는 눈돌아가서 개새끼 잡아죽여야한다면서 길길이 날뛰었다 난 그때 그 할배가 더 무서웠다 진짜 무슨 유인원이 화난것 같더라
그일이 있은후 할배들이 아침저녁으로 삼삼오오 모여 몽둥이들고 누렁이를 찾으러 다녔다
근데 개가 영리한 동물이긴 한지 사람들 분위기가 심상치않자 얘도 사람들 근처엔 얼씬도 안하더라
그러던 어느날 할매할배 심부름으로 말린 고추가질러 건조실에 갔다
문열어놓고 고추 쓸어다 마대자루에 넣고 있는데 뒤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나더라
뒤돌아보니까 검은 누렁이가 있었다
길가던 중이었는지 몸통은 길쪽을 향하고 고개만 나한테 돌린채 충혈된 눈으로 핵헥거리고 있었다
삐쩍 마르긴 했어도 대형견이 그렇게 문을 막고 쳐다보는데 난 진짜 정신 놓을만큼 무서웠다. 우는것도 잊고 아무것도 못한채 그냥 떨면서 쳐다보기만 했다
얼마나 오래 그렇게 있었는진 모르겠는데 시간이 흐르고 그냥 아무말없이 누렁이는 날 지나쳐갔다
난 무서워서 나가서 도망칠 생각도 못하고 건조실 문 닫고 창문으로 누렁이가 어디로 가는지 내다보기만했다
근데 누렁이가 우리집 외양간 쪽으로 걸어가더라. 누렁이가 대형견이긴 했지만 소한테 비벼볼 정도는 당연히 아니었다.
얘가 거길 왜가는가 했는데 보니까 소줄려고 불려놓은 사료랑 여물을 먹더라
근데 그 통이 좀 높아서 두다리로 서서 힘겹게 먹더라. 핥짝거리면서 간간히 먹는데 보는데 뭔가 갑자기 동정심이 솟구치더라
그리고 그날부터 난 저녁먹기 전에 대야같은데다 누렁이 몫을 따로 덜어놓고 들어갔다
외갓집이 돌계단을 올라가야 되는 높은 집이었고 외양간은 아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저녁먹고 창고쪽에서 누렁이가 와서 여물먹고 가는 모습을 종종 구경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번은 밭일이 좀 늦게 끝났다.
느려터진 경운기를 타고 해거 지고나서야 집에 도착해서 할매할배들은 씻지도 않고 밥차리러가고 난 어둑어둑해졌지만 나름 일과라고 누렁이 밥을 덜어주러갔다
소들도 대부분 자고 있었고 밤벌레소리만 요란했다. 누렁이 몫을 덜어주고 외양간 차양치고 나오려는데 뭐가 발에 툭 걸리는게 아니냐
화들짝 놀라 뒤돌아보니까 누렁이였다
진짜 너무너무 놀래서 비명지르면서 외양간 쪽으로 자빠졌는데 내 소리에 놀라 자고 있던 소들도 놀라서 소리지르면서 일어났다
내가 자빠진곳 옆으로 아직 덜큰 송아지가 묶여있었는데 얘도 막 놀라면서 뒷걸음질 치는데 그 찰나에 순간에 정말 깔려서 죽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때 처음으로 누렁이가 짖기 시작했다
무슨 쇳소리에 가까운 되게 긁는듯한 소리였는데 컹컹이 아니라 켁켁같은 소리였다.
아무튼 나도 송아지도 그소리에 놀라고 할머니도 내 비명소리랑 소들 울음소리에 놀라서 나왔다가 나랑 누렁이보고 막 할배부르고 마을사람부르고 소리를 지르셨다
누렁이는 놀라서 외양간 안쪽으로 도망쳤고 할매가 내려와서 나 업어다 데리고 올라갔다
그 뒤로는 난 할매한테 혼나느라 직접 보지는 못했고 지금은 죽은 형한테 듣기만 했다. 할배랑 동네할배들이 우르르 와서 누렁이 잡아다 팼다더라
그렇게 누렁이는 맞아서 죽었고 할배들이 부정탄다고 논에가서 화장시켰다고 했다
누렁이 태우고 난뒤에 뼈랑 잔해속에서 둥근 철사고리가 나왔다고 했다
말을 들어보니 어렸을때 목줄대신 매어놓은건데 어떤 경유에선지 사람 손에 벗어나서 살게 됐고 그대로 자라면서 철사가 목안으로 파고든 모양이었다
얘가 삐쩍 마르고 짖지도 않은 이유가 그거였던것 같다고 형이 말해주는데 듣고선 너무 미안하고 슬퍼서 정말 펑펑 울었다
그 일 이후 다시 부모님이랑 살고 어느덧 군대도 다녀오고 나이도 꽤 먹었지만 아직도 검은 누렁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그 뒤로 강아지를 키우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동생한테만 들려줬던 얘기인데 강아지 화장해줬다는 게이글 보고 생각나 써본다
말못하는 짐승이라지만 그 천성은 사람보다 선한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