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빠는 회사원이고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병으로 돌아가셨다.
워낙 오래된 일인데도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라 엄마가 돌아가시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내 기억에 따르면 새벽에 엄마가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고 아빠는 자고 있던 나를 깨워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어.
그 때 이모가 엄마 곁을 지키고 있었는데 우리가 오기 전까지 전기충격가하고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의사는 어린 내가 충격을 받을까봐 처음엔 막았다가 나중에 들여 보내줬어.
그때 난 한참 어렸지만 이게 엄마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겠더라.
난 엄마 손을 잡고 죽지마라고 엉엉 울었는데 엄마는 결국 그날을 넘기지 못했다.
내가 처음 본 사람의 죽음은 엄마의 죽음이었고 의사의 걱정대로 내 뇌리에 박혀 잊혀 지지 않았다.(아직도 당시의 다른 기억은 희미한데 엄마의 죽음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몇 년 후 아빠가 새엄마를 들인다고 했을 때 묘한 거부감 같은 걸 느꼈던 거 같아.
아빠는 엄마가 죽고 2년 만에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재혼을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여러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고 해.
일단 나이차가 컸고 (이때 아빠는 30대 후반이었고 (난 10살) 여자는 20대 중반이었다.)
이 때문에 여자 쪽 가족들도 반대했어.
여자의 가족 뿐 만아니라 내 친엄마 쪽 외가와의 갈등도 있었다.
특히 외할머니는 ‘딸이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았냐?’며 굉장히 싫어했고.
아빠도 이에 대해 엄청난 가책을 느꼈다고 한다.
(다만 외할아버지는 아빠를 이해해 주었고 이왕 재혼 할 거면 날 생각해서 빨리 하라고 하셨대. 내가 어머니 없이 자라는 건 장래에 좋지 않다고 하시면서.)
이 외에도 아빠가 여러 모로 고민할 사항들이 있었지만 항상 마지막에 내가 생각났다고 한다.
그래서 재혼하기로 마음을 굳혔을 때도 ‘새엄마가 생길지도 모르는데 괜찮겠느냐’고 엄청 조심스럽게 물었던 기억이 나.
위에서도 썼듯이 난 아빠의 재혼에 대해 묘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어.
엄마가 죽는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도 있었고 덤으로 동화 속 못된 계모를 많이 봐 와서 새엄마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있다.
하지만 아빠가 나 때문에 원하는 대로 못사는 건 안 된다고 생각했던지라 재혼을 반기지 않았지만 아빠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어.
다행 이었던 건 새엄마가 내 걱정과는 달리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던 거야.
새엄마는 항상 나와 친해지려고 노력했고 나도 그런 새엄마한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갔어.
그래도 당장 ‘엄마’라고 부르는 건 어색해서 1년간은 ‘누나’나 심지어 ‘아줌마’라고 부르기도 했지.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였나?
내가 고열로 정말 심하게 앓아누운 적이 있다.
이때 난 정말 엄마처럼 병으로 죽는 줄 알고 부모님 몰래 유언장 써서 배게 밑에 두고 그랬어.
그런데 새엄마가 그림자처럼 내 곁에 찰싹 달라붙더니 하루 종일 내 옆에서 병간호를 하는 거야.
마치 진짜 친자식처럼.
어찌나 지극 정성으로 보살폈던지 내가 감동 먹고 이때 처음으로 새엄마를 ‘엄마’라 불렀던 기억이나.
그리고 난 기억이 안 나는데 내가 ‘새엄마라면 믿을 수 있다. 아빠를 잘 부탁한다.’고 얘기 했다고 해.
새엄마는 잊을 만하면 이 얘기를 꺼내서 웃는데 난 들은 날마다 이불 킥 팡팡한다.
여하튼 이렇게 새엄마는 날 친자식처럼 대해 주었고 초등학교 5학년 즈음엔 나도 완전히 마음을 열어 진짜 친엄마와 아들처럼 허물없이 지냈다.
그러던 중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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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올라 갈 때 즈음 몸에 한창 변화가 생기고 말로하기 힘들지만 뭔가가 달라지기 시작했어.
성기에 털도 나고 성적 호기심이 왕성해져 부모님 몰래 야동도 다운 받아보고...
그러다가 우리 부모님도 섹스를 할까 호기심이 들더라.
그때는 윤리적, 도덕적 가치가 자리 잡는 거 보다 내 성적 호기심이 자라나는 게 더 빨랐을 때라 그런 생각을 하는데 아무 거리낌이 없었어.
물론 직접 대놓고 보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였고 간접적으로 소리라도 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발소리가 나지 않게 두꺼운 양말 같은 걸 신고 까치걸음으로 살금살금 부모님 방 앞까지 접근해 몰래 귀 기울이곤 했어.
들킬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면서도 성적 호기심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종종 진짜로 아빠랑 새엄마가 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그때 새엄마랑 아빠가 엄청 야한 대화를 나누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래 돼서 구체적으로 기억나진 않아.
다만 문틈으로 치고 박고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난 바로 문 앞에서 엄청 흥분해 고추를 만지작거렸던 건 기억난다.
낮엔 자상하고 좋은 부모님들이 밤엔 짐승처럼 섹스 하는 것에 난 엄청난 흥분을 느꼈고
다 듣고 나면 내 방으로 돌아와 문 잠그고 부모님이 방안에서 섹스 하는 걸 상상하며 자위를 하곤 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러한 일을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지.
그렇게 나의 섹스 판타지는 날이 갈수록 늘었고 그러던 중 근친과 관련된 내용의 야동에 빠지게 되었어.
내가 미쳤는지 엄마랑 아들이 관계 맺는 거 의주로 다운받고 그랬다.
이게 실제로 될까란 호기심도 들고 심지어 나랑 새엄마랑 이런 관계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까지 했어.
물론 야동은 판타지여서 그렇게 되는 건 불가능한걸 알고 있었어.(학교에서 하도 야동은 사기라고 가르쳤으니까)
그래도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 나도 야동처럼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혼자서 새엄마랑 하는 상상을 하며 자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후회하게 될 그 일이 터졌지.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날의 요일이 토요일이었던 건 기억해.
새벽에 소변을 누기 위해 화장실 쪽으로 가는데 새엄마가 술에 취한 채 소파위에 뻗어 있는 거야.
새엄마는 착한 이미지와는 달리 술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결혼 후에는 자제하다가 가끔 이렇게 정신 나갈 때까지 마시고 뻗어 있곤 했다.
다만 가족에게 민폐 끼치지 않기 위해 ‘가족이 보지 않는 때’에만 그랬어.
가령 이날은 아빠가 당직이라 다음날 까지 집에 없었고 나 역시 주말엔 늦게 까지자는 걸 알기 때문에 아침을 안 챙겨 줘도 되는 걸 알았던 거야.(내가 그날이 토요일인걸 기억하는 이유야.)
그리고 맘 놓고 마시고 이렇게 뻗어있던 거고.
그런데 이렇게 가족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새엄마의 마음과는 반대로 내 마음 속에는 불순한 생각이 꿈틀대고 있었어.
진짜, 내가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이날로 돌아가 날 막을 텐데...
‘왜 그랬을까?’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유가 너무 명확하니까.
‘하고 싶다.’
뒷일은 생각도 안한 채...
물론 새엄마 앞에서 잠깐 망설였었어.
하지만 그건 뭔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죄책감 같은 그런 게 아니라 하는 도중 새엄마가 갑자기 깨어나서 혼내면 어쩌지 하는 1차원적 이유였다.
결국 난 성욕을 못 이기고 일을 저질러 버렸어.
난 새엄마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흔들어 깨웠다.
새엄마한테 방가서 주무시라고 말도 걸고 뺨도 때렸고.
그러나 새엄마의 정신은 이미 저 너머로 날아가고 없어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어.
그렇게 겉으로는 새엄마를 걱정하는 척, 속으로는 ‘깨어나지 마라’고 빌면서
조금씩 옷을 벗겼다.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긴장하고 새엄마 눈치를 봐가면서 천천히 바지랑 팬티를 벗겼고
그리고... 그렇게 새엄마와 관계를 맺었어.
구체적인 기억은 잘 안 나는 데
구멍을 잘 못 찾았던 거랑 새엄마가 깰까봐 초 긴장상태에서 일을 치룬 건 기억난다.
그리고 새엄마 몸 안에 사정했던 것도...
그때는 내게 임신이나 피임에 대한 개념은 전혀 없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었어.
심지어 현자타임에 대한 개념도 없어서 사정 후 나른해 지는 것도 이해 못하고 다시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계속 흔들었고 다시 서고 싸고 서고 싸고를 반복했다.
사랑도 뭣도 없이 오직 성욕만이 날 지배하고 있었고
그저 더 이상 쾌감이 느껴지지 때 까지 계속 새엄마 안에 사정했지.
그 날이 있고 다음날 난 새엄마가 눈치 채지 않을까 걱정했어.
물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뒷정리 깨끗하게 하고 시치미 뚝 땠지만 그래도 두근두근 뛰는 가슴은 멈추질 못했다.
하지만 아침에 새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반응을 보였고 그 후에도 며칠간 별 다른 일이 없자 나는 속으로 ‘괜찮겠지?’하고 안도 했다.
그리고 다시 예전처럼 부모님 방 몰래 엿들으며 자위도 하고 또 나중에 새엄마랑 또 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기대도 했어.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후 학원 갔다 왔는데 집안이 화기애애한 거야.
무슨 일인가 했는데 아빠가 새엄마가 임신했다고 좋아하며 말하더라.
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어리버리 하다가 ‘동생이 생겨서 좋다 축하한다.’이런 식으로 같이 기뻐하는 척 했던 거로 기억해.
하지만 속은 혼란스러웠지.
참고로 당시 내 성지식은 야동으로 섹스는 알았지만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잘 모르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섹스가 뭔가 임신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어.
그 후 새엄마의 배가 점점 불러가는 사이 나는 학교 성교육을 통해 이전에는 알 듯 말 듯 모호했던 것들도 확실하게 알게 되었고.
일련의 일들이 뭘 의미하는지 거의 알게 되었어.
혹시 새엄마 뱃속의 아이가 내 아이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거야.
이때 ‘내가 조용히 가만히 있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 봤지만.
병원에 가면 모든 게 다 밝혀 질까봐 두려웠어.
그때 난 병원이 무슨 만능 그런 건 줄 알아서 병원만 가면 모든 게 자동으로 밝혀질 거라 생각하고 있었거든.
친자확인 같은 것도 병원에서 알아서 다 해주는 걸로 알고 있었고.
진짜 혼자서 온갖 상상 다했다.
만약 이 아이가 내 아이로 밝혀진다면...
집안이 얼마나 발칵 뒤집힐까... 또 얼마나 처 맞을까... 교도소 가는 것도 상상했다.
그렇게 혼자서 끙끙거리고 있는데 그게 눈에 뜨였는지 새엄마가 나에게 요새 무슨 걱정이 있냐고 묻더라.
그리고 새엄마는 내가 뱃속의 아이 때문에 소외 될 거라 걱정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동생만 편애하지 않아. 너랑 이 아이 똑같이 사랑해줄 거야.’라며 나를 안아주었어.
참 좋은 새엄만데...
근데 난 그 짓을 저질러 놓고 이러고 있으니.
그런데 인간이란 동물이 참 약아가지고, 첨엔 여러모로 걱정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 사태에 대해 안의하게 생각 했고 또 새엄마 뱃속의 아이가 아빠아이일 거라 믿었어.
새엄마와 아빠가 수년간 노력했는데도 안 생겼는데 고작 그 하루 때문에 생길 리가 없다고 스스로 합리화 했지.
그로부터 몇 달 후 새엄마는 내 여동생을 낳았어.
어찌나 피부가 백옥같이 희던지 아빠랑 새엄마가 백설 공주라고 부르며 좋아했던 게 기억난다.
(지금도 워낙 하얘서 동급생과 나란히 두고 보면 백인이라 착각할 정도야.)
한편 그렇게 좋아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나는 ‘아빠 아기였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어.
병원에서 친딸인 거로 나왔으니까 저렇게 좋아 할 수 있는 거지 내 딸인 걸로 나왔으면 뒤집어 졌을 거 아냐,
난 그렇게 믿고 다행이라고 안심했다.
한편 새엄마가 내 동생을 낳은 후 외가(새엄마 쪽)와의 소원했던 관계도 풀어지기 시작했어.
특히 외할아버지는 이전 까진 우리 아빠를 완전 도둑놈 취급 했었는데 이 이후부터는 사이가 급속도로 좋아졌다.
그렇게 동생은 온 가족의 보물이 되었어.
물론 아빠와 새엄마는 동생에게만 관심이 쏟지 않고 나한테도 똑같이 사랑과 애정을 베풀어 주었기 때문에 (가끔은 일부러 나와 동생간의 균형을 맞추려고 무리를 해서 오히려 부담이 될 때도 있었다.) 별 다른 문제는 없었고 나도 남는 시간엔 동생을 돌봐주었어.
동생은 가족의 보살핌 속에 무럭무럭 자랐고 난 고3이 돼 수능을 보고 서울 중위권 대학에 붙었다.
이때 부모님들은 엄청 놀랐는데, 왜냐하면 내가 그리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었거든.
진짜 고3때도 공부에 올인 하지 않고 할 건 다 해가며 지냈다.
공부하다 머리 아프면 tv도 보고 또 틈틈이 동생하고 놀아주고 그랬어.
(다만 공부를 고3때 갑자기 벼락치기 식으로 한 게 아니라 고1 때부터 차근차근 내공을 쌓아 온 건 있었다.)
그런대도 서울 중위권 대학에 입학하자 부모님들은 엄청 좋아했고 또 아빠는 날 평범한 아이와는 다른 수재라고 믿었는데 1년 빡세게 공부 하면 sky도 노려 볼 수 있지 않겠냐고 재수를 권했어.
그런데 1년 동안 시간과 돈을 더 들여가며 공부하긴 싫더라.
또 내가 붙은 대학이 나쁜 대학도 아니었고 집하고 굉장히 가까워 뛰어서 5분 거리 정도 밖에 안 됐기 때문에 포기하기 싫었던 것도 있었어.
그래서 재수는 됐다고 말했고 그냥 붙은 대학을 가겠다고 했지.
내가 대학생이 됐을 때 동생은 6살이 이었어.
이땐 새엄마도 맞벌이로 바빠서 동생 돌볼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동생을 거의 내가 업어 길렀어.
대학도 다니면서 강의시간을 조절해 새엄마가 없는 동안 동생 유치원 등, 하원 시키고 밥도 먹이고 놀아주고 씻겨주고 재워주고... 진짜 어지간한 건 내가 다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건 대학이 집하고 가까웠던 점도 있었다. )
부모님은 대학도 다니느라 바쁜데 동생까지 돌보는 나한테 엄청 고마워했고
새엄마는 농담 삼아.
‘오빠가 아니라 아빠야 아빠’라고 종종 말했어.
그런데 이게 내 가슴을 콕콕 찌르는 거야.
이때 난 동생과의 관계를 다시 의심하고 있었어.
이 아이는 정말 내 동생일까 아니면 딸일까?
예전 중학생 때에는 병원에서 친자확인이 이미 끝났을 거라고 믿었었지. (엄밀히 말하자면 의심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어린 나의 착각이었고 나이가 들면서 병원에서 자동으로 친자검사를 해주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 (알게 된 경위가 연예인들 친자 확인 문제로 사회가 시끄러웠을 때였던 걸로 기억해.)
친자확인을 하려면 따로 업체에 의뢰해 유전자 검사를 받아야 했던 거야.
즉, 이복동생이 내 딸일 가능성이 없어진 게 아니란 말이지.
일단 아빠는 내 동생이 자기 친자식이라는 걸 눈곱만큼도 의심하고 있지 않고 있었어.(지금도)
여러모로 아빠하고 빼닮은 점이 많았기 때문에 틈만 만나면
‘우리 딸은 누굴 닮아서 이렇게 참하게 생겼을까?’하고 장난으로 얘기하고 그랬어.
근데 이게 엄밀히 말하면 나하고도 닮은 거라서 여러모로 불안했다.
가령 새엄마나 아빠한테는 쌍꺼풀이 없는데 나한테만 있는 쌍꺼풀이 동생한테도 있는 거야.
물론 이게 유전적으로 ‘내 딸이다, 아니다’를 증명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나랑 닮은 점을 발견할 때마다 뭔가 가슴이 찔렸어.
‘뭐, 여태까지 문제없이 잘 살았으니 묻혀 지내면 앞으로도 문제없지 않을까?’라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생각도 해봤지만... 마음이 불편한건 매한가지더라.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문득 든 생각이 ‘부모님 몰래 친자검사를 해볼까?’였다.
‘해볼까?’하는 마음은 곧 ‘하자!’로 바뀌었고 어느 순간부턴가 검사비용을 모으고 있었어.
그런데 업체하고 상담도 해보고 돈도 준비가 다 됐는데도 막상 하려고 할 때마다 망설이고 미루게 되더라.
왠지 알아선 안 되는 사실을 깨닫게 될까봐 무섭기도 했고 또 찜찜하기도 했고...
심지어 검사신청하기 직전에 갑자기 귀찮아 진 것도 있었어.
‘어차피 알든 모르든 동생과 오빠로 지낼 건 마찬가지인데 굳이 시간과 거금(당시 내 입장에서)을 써가며 알 필요가 있을까?’ 하고 말이야
그렇게 마음을 잡지 못하고 미루다가 대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마음을 굳히고 나와 동생 샘플(우리 경우에는 샘플로 칫솔을 보냈다. 그때 동생 칫솔 많이 닳아서 내가 새 걸 사주고 닳은 칫솔을 동생 샘플로 보낸 거야.)을 친자확인업체에 보낼 수 있었다.
(이거 가족 모르게 동의서 사인하고 진행한 거였는데 요즘엔 당사자 몰래 하는 거 법에 걸린다고 안 해준다더라.)
결과 기다리는 동안 참 여러 가지 기분이 들었다.
일단 오랫동안 미뤄 두었던 숙제 하나를 끝낸 기분이 들었고
또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동생이 내 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청 허황된 생각처럼 느껴지는 거야.
나랑 새엄마 사이의 섹스는 내가 중학생 때 그 한 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것도 새엄마가 완전히 취해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 그 날 딱 하루.
그에 비해 아빠랑 새엄마는 그날 전, 후에도 여러 번 관계를 맺었다. (위에 서술했듯이 밤에 부모님 방 앞에서 엿들어서 알고 있었어.)
따라서 단순 횟수로만 따지면 나보다 아빠 딸일 가능성이 훨씬 높은 거지.
이쯤 가니 내가 그동안 괜한 걱정한 거 같더라.
무슨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 설마 내 딸로 밝혀지는, 그런 막장 같은 상황이 일어나겠냐.
‘에이 괜히 돈 버렸네.’
‘좀 더 신중히 생각하고 검사할 걸’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뭔 용기가 들었는지 진짜 만에 하나 아빠가 아닌 내 딸 인거로 밝혀져도 왠지 무덤덤하게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때 동생은 부모님보다 나를 더 잘 따랐고 집에서는 무슨 병아리 마냥 내 뒤를 졸졸졸 따라다녔어.
잠도 혼자서는 못자서 내가 어쩌다 외박이라도 하면 엉엉 울며 전화했고 꼭 내가 재워줘야 잠이 들었지.
그러다 보니 가끔 내가 진짜 아빠가 된 거 같은 기분도 들고 해서 만약 친딸이라는 결론이 나와도 나 혼자만 알고 있다면 상관없지 않을까 생각했고
업체에서도 비밀 엄수 해준다고 했으니까 갑자기 용감해 지더라.
그리고 며칠 후 검사결과가 나왔는데...
동생은 내 딸이었어...
그러니까...
동생은 ‘아빠와 새엄마의 딸’이 아니라 ‘나와 새엄마의 딸’ 인거야...
친자일 확률이 99%가 넘는다는 유전자검사결과가 내 뇌리에 각인이 되더라.
마치 친엄마가 죽은 기억이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각인 된 것처럼.
내가 업체와 상담하면서
‘이거 틀린 결과일 수도 있는 거 아니냐. 틀릴 확률이 1% 남아 있지 않느냐’고 물어 보니까 장황하게 유전적인 근거를 들어가며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어.
구체적인 건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그냥 한마디로 쉽게 말하면 ‘네 아들 맞아.’인거야.
모든 게 확실해지고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걸 안 순간,
갑자기 바닥이 꺼지고 아래로 끝없이 추락하는 느낌이 들더라
이전 까지 했던 낙천적인 생각들.
어떤 결과든 다 받아들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산산이 부서 졌고
당장 현실적인 문제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어.
이걸 아빠나 새엄마가 알게 되면 어떻게 되지?
대체 무슨 표정을 지으실까?
정말 온갖 생각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게 정신이 멍해지고...
난 유령에 홀린 듯 거리를 맴돌다가 집에 들어왔어.
그리고 책상에 쳐 박혔는데 눈물이 나오더라.
예전에는 혼나는 것만 생각하고 걱정했었는데 좀 컸는지 새엄마랑 아빠에게 엄청난 죄책감이 느껴졌다.
부모님이 나에게 베풀어 준 은혜는 정말 하늘같고...
특히 새엄마는 날 진짜 친 자식처럼 대해줬는데...
나는...하... 진짜...
엄청 후회도 하고, 죄책감도 느끼면서, 일단 이일은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기로 다짐했어.
이거 알면 새엄마와 아빠가 무슨 충격을 받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할 수 있으면 무덤까지 비밀로 가지고 갈거야.
다만 내 동생에게는 언젠가 말해야하지 않나 생각중이다.
아무튼 그 일이 있고 동생이 ‘오빠, 오빠’하고 날 부를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어.
밤에 재워 줄 때 동화책 읽어주거나 자장가 불러 줬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편히 자는 동생 얼굴 보니까 기분이 묘하더라.
그렇게 내 감정 숨기고 살려고 했는데 그 해 크리스마스 파티 때 눌러놨던 게 한꺼번에 터졌어.
그 때 동생이 앞에서 엉덩이춤을 추고 아빠랑 새엄마가 박수치며 좋아하고 있는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내가 벌컥 울어 버린 거야.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이 동생 엉덩이 춤 보다가 예고도 없이 터지더라 진짜...
가족들 다 놀라서 어리둥절해 하고... 동생은 울지 말라고 휴지 가지러 갔는데 키친타올 들고 오고... 정신없었다.
엄마는 내 등 토닥이며
‘아들, 많이 힘들었구나.’ 하고
아빠가 무슨 일 있었냐고 묻자
난 여러모로 목이 매여서 비밀 말하기 직전 까지 갔다가 우리집안 풍비박살 나는 광경이 떠올라서 꾹 참았다.
그날은 속으로 골골 앓던 것이 눈물로 분출해 나온 날이었어.
지금도 동생을 보면 여러 가지로 혼란이 오고 그런다.
이제 곧 입대를 하니까 가서 머리좀 식힐 생각이야.
썰 풀려면 더 있지만 여기서 마칠게 더 이상 너희가 바라는 그런 내용도 없을 거고.
또 언젠가 죗값을 받겠지만 일단 현재에 충실히 살기로 했다.
너무 자책하며 사는 건 나뿐만 아니라 주변을 힘들게 한다는 걸 알았거든.
아무튼 재미없는 내 고민 읽어 줘서 고맙고 모두 좋은 밤 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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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왔는데 솔직히 이렇게 많은 덧 글이 달릴 줄 몰랐다.
그 중에는 응원 글도 있고 주작이라는 사람도 있던데...
아무래도 기억에 의존하다보니 좀 앞, 뒤가 안 맞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왜곡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기억은 객관적인 기록이 아니라서 어느 정도 개인의 해석이 가미되니까 그런 부분은 어느 정도 이해해 주길 바라는 바이다.
그리고 덧 글을 보니까 ‘새엄마가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다음날 질에서 정액 흐르는 것 때문에 모를 리가 없다. 고로 주작이다.’ 라는 사람이 있던데...
나도 그 부분은 잘 모르겠다.
솔직히 내가 새엄마 외에는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맺어 본적이 없어서 아직도 섹스에 대해서 잘 모르는 편이다.
얼마 전까진 너무 바빠서 연애는커녕 대학 동아리나 모임 같은 것도 제대로 못했다.
본문에서 서술했듯 새엄마가 맞벌이 하셔서 동생 거의 내가 떠맡아서 길렀는데
진짜 공강 시간 다 맞춰가며 동생 돌보는데 시간을 쏟았다.
예를 들어 동생 하원 시간이 오후 3시쯤인가 그랬는데 그 시간대에 무조건 공강 만들어서 달려가 동생 받아오고 그랬다.
그날 강의 다 끝나면 어지간한 일이 아닌 이상 바로 집으로 돌아와 동생부터 챙겼고...
아무튼 그 사람 덧 글 읽고 나니까 나도 혹해서 ‘설마 새엄마가 알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채 하는 건가?’라는 생각도했다.
근데 그 밑에 딸린 덧 글을 보니까 충분히 다른 변수가 있겠더라.
기억이 가물가물 하긴 한데 덧 글 에서 말한 것처럼 새엄마는 내가 사고치기 전, 후에도 아빠랑 관계를 맺었었고 난 이를 엿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는 내가 친자검사를 할 때까지 ‘동생은 내 딸이 아니라 아빠 딸이야.’라고 스스로 합리화 하는 근거가 되어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난 부모님 방에서 엿들은 것만 알기 때문에 엿 들은 거 외에 다른 시간과 장소의 추가적인 관계까지는 모른다.
즉, 덧 글에서 말하는 것처럼 새엄마는 그걸 가장 최근에 관계한 아빠의 정액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딸린 덧 글 에서 '상식의 무서움'에 대해서도 얘기해 줬는데 확실히 ‘술 먹고 일어났더니 아들이 자길 범해 놨다.’같은 비상식적인 일은 생각하기 힘들 거 같다.)
아니면 생각 못한 다른 변수가 있다던가.
여하튼 내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기 때문에 새엄마가 눈치 못 챈 이유에 대해선 더 이상 알 수 없고 나도 끼워 맞추기 식으로 추측만 할 뿐이다.
그리고 칫솔로는 유전자 검사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작이라는 사람이 있던데.
칫솔로 유전자 검사 가능하다.
친자검사를 위해 업체에서 요구한 샘플은 머리카락, 혈액, 손톱, 세포(면봉으로 입 안쪽 긁어서 보낸다.), 칫솔 등등이었던 거로 기억한다.
이중에서 한 가자만 선택해 보내도 친자검사가 가능하다.
첨엔 덧 글에서 말한 것처럼 머리카락을 생각했었는데 머리카락의 경우는 ‘보낸 샘플에 모근이 없어서 검사가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업체한테 들었다.
그런 경우야 가끔이겠지만 난 한 번에 확실하게 하고 싶어서 동생과 내가 쓰던 칫솔을 보냈다. (근데 칫솔도 몇 주 이상 쓴 걸로 보내야지 안 그러면 검사가 안 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
마지막으로 나랑 아빠가 유전자가 같기 때문에 검사결과 아빠 딸 임에도 내 딸로 나온 거 일 수도 있다는 글이 있던데,
사실 이건 내가 업체랑 상담 할 때도 물어 봤던 내용이다.
좀 시간이 지나서 구체적인 상담 내용 까진 기억이 안 나는데 들었던 답변은 ‘아빠 딸’이 ‘내 딸’로 혼동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나와 아빠가 유전자가 동일 할 수 없는 게 아빠한테만 유전정보를 받은 게 아니라 친엄마한테도 받았기 때문이다.
즉, 나는 100% 아빠의 유전자를 받은 게 아니라 50%를 받은 거고 이 50%는 친자 검사에서 아무 의미 없는 숫자라고 들은 거로 기억한다.
한마디로 내가 아무리 부정해도 동생이 생물학적으로 내 딸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 몇 년 전에 이런 확답을 들었음에도 덧 글 보고 혹시나 하서 다시 알아 봤지만 역시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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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썰 사이트를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나랑 비슷한 경우가 있나 찾아 봤는데 솔직히 공감도 안 되고 말도 안 되는 썰이 대부분이더라.
그래도 일반 사람들이 내 얘길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떻게 사고하고 대응할지 궁금했다.
사실 욕 엄청 먹고 모두가 나에게 돌을 던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응원글이 많아서 놀랐다.
물론 내 이야기가 워낙 비도덕 적이고 상식 밖의 이야기라 안 믿어 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너희들 덕분에 맘이 좀 풀어진 거 같다.
다들 고맙고,
모두 좋은 하루 보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