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생활을 이어온지도 어느덧 3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성장이라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많은 변화가 생겼고
이제 주로 연락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아닌 이곳에 있는 지인들이 되었다.
내 지인들의 대부분은 형 누나들이였는데
이건 내가 나이차가 큰 어린애들을 귀찮아하는 탓도있지만
나랑 동갑인 애들이 거의 없는 탓도 크다.
지금까지 내가 이곳에서 만난 동갑내기 애들은 끽해야 다섯명
내가 은둔생활을 하는것처럼 들릴수도 있겠지만
평일에도 아는사람들 만나서 밥도 먹고 주말되면 영화도보고
하는걸보면 분명 이상하다고 느낄것이다.
한인 수가 적은 동네도 아니고 특히 최근에는 만명을 넘어섰다고
뉴스까지 봤는데...;;
아무튼 내가 이곳에 온지 일년이 채 안되었을때
학원에서 만난 형이 하나 있었다.
그냥 뭐든지 평범한 형이였다.
얼굴은 잘생긴듯하지만 평범한
키는 그나이대 형들의 평균 정도의
덩치도 나랑 비슷한
성적도 중간정도 하는
그냥 존재자체가 평범함의 정의인 그런 형이였다.
다만 이형이 평범함으로부터 거리가 먼 점이 하나있었다면
그건 이형의 성격이였다.
착해도 너무 착했다.
한성깔했던 나는 이 더러운 성질머리 덕분인지 아니면 때문인지
감히 눈치있는 외국애들이 놀릴 생각도 못했지만(다그랬던건 물론 아니다)
이형은 아니였다. 병신같은 애새끼들의 놀림감이 되기에
충분히 호구같은 성격이였고 그때마다 이형을 커버친건
나나 내친구, 그리고 내 여친이였다. (이때는 여친이 아니였다. 걍 아는 여동생)
아, 평범함이랑 거리가 먼게 하나 더 있었는데
이형 모솔이였다. 주륵
특별히 모난데 없는 사람이라 연애경험은 당연히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우연히 모솔이였다는걸 알게되고 토닥여줬다.
모솔이 아님을 평범함이라 단정지어서 불쾌한 모해인들에게는 그저 유감
이형이랑은 지금은 물론 알게된이후로부터 계속해서
가까워지고 있는중이다. 아마 이형이랑 돈독해질수 있었던건
이형이랑 같이 사지까지 내몰려봤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듯하다. (내가 전에쓴 학교에 불난썰 참조)
한학년 꿇어서 어린애들이랑 같은 학년이였던 나와 함께 하려고
한학년을 더꿇은 이형을 난 지금도 사랑한다.
그날은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맞는 첫 금요일이였다.
금요일 마지막 수업은 수학 수업이였고
한국인들에게 수학 수업은 고학년반이 아닌 이상
그저 성적표에 A하나 얹어주는 만만한 수업이였다.
선생도 우리가 다른애들 문제푸는 속도에 비해서 월등히
빠르다는걸 알았고 덕분에 우리는 그시간에 핸드폰을하던
다른숙제를 하던 비교적, 아니 매우 자유로웠다.
그 반에 한국인은 나랑 아는형, 그리고 이 글을 기준으로
장래에 아는형의 여자친구가 되실 누나 한명이 있었다.
얼굴은 예쁜거랑 닮은, 키는 여자치고는 큰, 몸매는 말라서 호리호리한
그런 누나였는데 이상하게 느껴지는 첫인상부터가 왜인지
거부감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동네는 좁았고, 이 점은 소수민족(?)인 우리 한국인들한테는
더욱 부과되는 점이였다. 몇다리 건너면 서로 다아는 사이인만큼
소문도 빨랐고 그 소문이 어떻게 날지, 아니면 아예 나지 않을지는
자기가 어떻게 행동하냐에 달려있었다.
먼저 말을 걸어온건 그 누나였다.
"안녕?"
거부감이 든다한들 첫인상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타입이 아니였고
괜히 적이 만들기 싫었던 나는 사람좋은 미소를 띄우며
기분좋게 인사를 받아줬다. 아는형도 마찬가지
얘기는 당연지사 꽤나 길게 이어졌고 (솔직히 수학시간은 확장판 쉬는시간이나 다름없었다)
처음 만났는데도 어색한느낌없이 계속 대화가 이어지자 이내
내 경계심도 누그러졌다.
그러더니 이누나가 뜬금없이
"내가 재미있는 얘기해줄까?"
하길래
"지금 분위기 나쁘지않은데 재미있는얘기라니
생각잘하고 하는게 좋을것같은데..."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자신있다며 그누나가 우리한테 질문을 던졌다.
"피카츄가 귤을 깔때 부르는 노래가 뭔지 알아?"
그래도 예의상 고민하는척이라도 해야하니 정말 척만하다가 내가
"흠 잘모르겠는데..." 하니까
옆에서 아는형도
"나도 잘 모르겠다."
누나가 손가락으로 귀를 만들어 피카츄흉내를 내며
"언제언제까지나~"
(포켓몬스터 오프닝곡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q_KdJJR0-Y8
41초 참조
절망스러웠다.
무뚝뚝한 내성격에 그 애교를 웃으면서 받아주기도 힘들었고
뭣보다 씨바 너무 재미가 없어서 할말을 잃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안돼. 여기서 재미없는티를 내면 백퍼 분위기는 급속냉동각이다.
저형은 나보다 더 무뚝뚝한데 내가 여기서 뭔가 안하면 답이없어.
생각해라 씨발! 어서 100점만점에 못해도 95점짜리 리액션을 뽑아내!'
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고 그형이 웃었다!
학원에서 빼빼로데이라고 초등학교도 안들어갔을것같은
어린 여자애가 준 빼빼로를 자기 빼빼로 안좋아한다며
기어이 안받아낸 융통성, 눈치, 다정다감함까지 엮어서
종합선물세트로 개나줘버린 그형이 웃어줬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행이였다.
그러자 자기 개그뽕에 취한 그누나가
"웃기지? ㅋㅋㅋㅋㅋㅋ 또뭐가 있더라~"
'오씨발 하나님. 이럴때만 찾아서 정말 죄송한데
제발 기억안나게 해주세요. 원몰타임이라뇨 ㅅㅂㅅㅂㅅㅂㅅㅂ'
당연히 하나님은 부재중이셨고 하나가 더왔다.
그누나가 입을열었다.
'온다!'
"아마존에 사는 사람 이름이 뭐게?"
"음~~" 하며 또다시 속으로 생각한다.
'고민하는척해라 답이 중요한게 아니다
내가 최대한 귀기울여 집중한다는 티를내는것과
리액션이 중요한거다!'
"잘모르겠는데?"겉으로 이렇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이제 남은건 리액션 하나다!'
"잘생각해봐~"
'씨발 한번더다! 한번더 고민하고 리액션간다!'
속으로 생각하며 또 척만하다가 곧
"와 진짜 모르겠는데. 뭐야?"
그리고 그누나가 또다시 뽕에 취해 답을 말한다.
"아마~ 존(John)?"
'이런 씨발 망했어. 리액션을 할 동기부여가
안된다. 너무 재미가없어. 니년이 오늘 처음보는게
아닌 내 여사친이였다면 "아마존"나게 처맞았을거다 나한테'
그런데 옆에있던 형이 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고 웃었다.
이번엔 선생한테 주의까지 받을 정도로
수업은 끝났고 대충 손인사로 그누나를 보내고
그형한테 물어봤다.
"아니씨발 저게 진짜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난웃긴데"
"그래 형이라도 웃어서 다행이였다. 근데 어디가 포인트였어?"
"아니 딱히 웃긴게 아니라 저렇게 예쁜애가 개드립치니까
웃긴거같어."
"지랄났네..."
그리고 훗날 나는 차라리 내가 각고의 노력으로
리액션을 뽑아냈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하고
이날을 회고하게 된다.
2편에서 계속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