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시작은 평범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명의 아이
남부럽지 않게 살았고, 남이 부러워하지도 않는 그런 평범한집안이었다.
아마도 사람이 한 해에 얼마나 죽는지 신경 쓰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나도 그랬었고 적어도 그때 그 눈 내리던 날만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 같다.
간결하게 말하고 싶지 않지만, 간결하게 말해야 한다면 돌아가셨다.
그 자리에서 즉사로.
교통사고였다.
별다른 수식어가 붙지도 않는다. 그저 교통사고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버거운 일이었고
장례식장에서 내 손을 잡고 있던 어린 여동생은 그저 울기만 했었다.
어린 나이, 하지만 죽음이 뭔지 알고 다시는 볼 수 없음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는 더 이상 부모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살아남고 싶었다. 아니 살아남았어야 했었다. 내 손을 잡고 울고 있는 이 아이와 함께
내가 이 아이와 함께 운다고 해도 가혹한 세상이 내게 온정을 베풀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더욱 울 수 없었다.
꿈이 없었다. 그저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던 나날이었다.
일반고에 진학해서 공부하려고 했던 난 특성화고로 방향을 바꾸었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돈이 좀 있었다.
어린 동생과 내가 쓰기엔 적은 돈이었지만 그래도 허리띠를 꽉 매니
못 사는 것도 아니었다.
특성화고에 진학한 만큼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고.
선생님들에게 박힌 좋은 인상 덕에 큰 고생 없이 좋은 회사에들어가게 됐다.
그렇다고 고등학교 생활을 그다지 편하게 보낸 것도 아니다.
하루에 알바를 2개씩은 꼭 뛰었으며 알바가 끝나면 곧바로집에 돌아갔다.
조금은 오래된 단독주택이지만 전세나 월세가 아닌 집이었다.
당장 살기 막막했던 그때 내 소유의 집이 있다는 건 가뭄에 내리는 단비 같은 일이었다.
그래도 결론은 무사하게 고등학교 생활을 넘기고 취업했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가던 비가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집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찰나 집 담벼락 옆에서 어떤 여자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옆에서 사람이 죽어가던 돈을 빼앗기던 문을 넘어 집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괜한 오지랖 부렸다가 내가 잘못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집에서 날 기다리는 여동생이 있었기에.
그 아이에게 내가 없다는 상상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하지만 대문을 넘어가던 찰나 집에 문이 열리며 동생이 나왔고
동생은 대문을 막 넘어 들어오던 나에게
"오빠, 저기 무슨 일 있나 봐! 빨리 가봐!"라고 했다.
내가 안 가면 본인이 뛰쳐나갈 기세였다.
난 그런 동생을 보며
"집 잘 지키고 있어"라고 하며 비명이 들린 골목 쪽으로 달려갔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동생 곁에 머무르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고.
문제의 집 옆 골목에 도착하자 정체불명의 남자가 여자를 둘러메고 골목 사이의 골목으로 사라지는 걸 보자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우산을 집어 던지고 달렸다.
내 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달렸다
다행히 그 남자가 사라지기 전에 찾을 수 있었다.
여자는 교복을 입고 있었고.
동생이 다니는 학교의 교복과 비슷했다.
달려가서 그 남자의 등에 발차기를 날렸고
남자가 넘어지며 놓치는 바람에 떨어지는 여자를 간신히 받을 수 있었다.
여자를 내려놓고 정신이 있나 없나를 살피던 도중 남자가 일어나 도망쳤다.
쫓아가려 했으나 비가 꽤 세차게 왔다.
어쩔 수 없이 여자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여자를 데리고 오자 동생이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야 오빠?" 하며 묻는 동생에게
"설명은 나중에 할게 우선 수건 가져다가 이 아이 몸에 물기 좀 닦아줘"라고 말했다.
동생이 대충 그녀의 몸에 물기를 닦아주고 내가 침대에 눕혔다.
하지만 고등학생, 그것도 여자를 집에 오래 두고 있을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뒤져 여자의 부모님 연락처를 알아냈고.
전화를 걸었다. 집의 주소를 불러주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를 눕혀놨던 방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녀가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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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늦었으니 여기까지만 쓰고 남은 이야기는 내일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