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가다 26

딴돈으로 비아그라 사먹고 떡치러 가즈아~~~

나의 노가다 26

링크맵 0 1,124 2020.03.17 21:27
출처블라인드 건설엔지니어

합격 문자를 받고는 고민이 많아졌다.

한번 가 봐야하는건 아닌가..

 

아무에게도 말은 하지 않고 어렵게 연차를 내어 갔다.

 

학교 대강당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시설직 뿐만 아니라 행정직들도 뽑는지라 사람들도 많았다.

 

잠시 후 줄그어진 갱지를 나눠주고는 논술을 쓰라 했다. 하.. 머지 이건.

 

주제는 잘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학교발전과 지역사회 발전에 대한 내용으로 기억나고 기술직인 나도 이 논술을 써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쓰라니 뭐.

 

평소에 생각하던 것을 아주 평범하게 썼다. 사회복지센터와 평생교육원을 도입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무료 또는 저렴한 학비로 교육을 한다. 이 컨셉을 건축적인 시야로 풀어서 써냈다.

 

지금보면 이제 건설회사 일년차가 뭘 알겠는가.

주먹구구식으로 건축물의 건축비와 유지관리 그리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의 LCC 생애주기를 주제넘게 썼었던 것 같다.

 

면접을 볼 줄 알았는데 면접은 논술 합격자에게 주어진단다. 양복 괜히 입고왔네.

 

그리고는 까맣게 잊고 계속 일을 하고 가끔씩 다희랑 만나 데이트를 했다.

다희는 천상 여대생이었고 가끔 이런 여린애가 어떻게 술집에서 일할 생각을 했는가 하는 의아함이 들었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서로의 몸을 갈구하고 그리고 에너지가 식으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아예 모텔에서 만나 사랑하고 누워서 얘기하고 그리고 뭘 시켜먹고 그리고 사랑하고.

 

다희는 내가 아빠같기도 하고 동네오빠같기도 하고 가끔은 연인같기도 하다면서 말했고 나 또한 디희랑 같이 있는 시간이 즐거웠다.

 

우리는 정말 많은 시도를 했다. 여러기지로.

어차피 암묵적으로 사귀는 사이는 아니지만 서로 욕정을 푸는 상대로서 다 오픈하고서 서로의 성감대를 찾아갔고 그것이 꽤 좋았다.

 

다희는 홀어머니 모시고 사는 외동이다. 어렸을적 곧잘 일등을 할 정도로 공부도 잘 했지만 아빠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고 엄마가 어렵사리 일을 하며 다희를 키워왔다고 했다.

 

다희도 고등학생 때 알바를 병행하며 학업에 정진했고 그 흔한 학원도 안다니고 나름 빠지지 않는 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그러나 학비와 생활비는 만만치않았고 과외를 하고 단기 아르바이트로 스스로 학비를 벌곤 했지만 이학년 겨울 방학 때 정말 돈 걱정없이 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에 어찌저찌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처음엔 두려웠고 낯설었지만 이 몸뚱아리 허락하는거 처음이 어렵지 한번 이차를 나가니 그게 꽤 돈이 된다고 했다.

 

이쁘장한 외모에 머리도 좋아서 손님들이 좋아했다고 하고 전화번호를 따 내어 계속 연락하자 사귀자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이상하게 나를 만나서는 침대에 누워 서로 두런두런 얘기하던게 잊혀지지 않았고 처음이라고 당당히 얘기하는 오빠가 귀여웠다고 했다.

 

어렵게 용기를 내어 전화를 했고 그렇게 우리 만남은 시작됐다.

 

다희는 어렵게 자라서 그런지 함부로 돈을 쓰는일이 없었고 항상 최대한 경제적인 방법으로 지출을 했다. 만나면 다섯번에 한번 정도는 다희가 모텔비를 냈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내가 계속 부담했다.

 

다희는 이 지긋지긋한 생활이 정말 지겹고 탈출하고 싶다고 자주 말했다. 우리의 첫 만남이 룸싸롱이란 것 때문에 글쎄.. 암묵적으로 우리 둘은 사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고 어찌보면 다희는 내가 꺼내기를 기다려줬을지도 모르겠다.

 

지하층 합벽을 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솔저서포트 밑으로 유로폼이 터져서 공구리가 한바가지 좌악 흘러나오고 있어 급히 공구리망을 보던 목수가 사람들을 데리러 가고 공구리공들도 위치를 옮겨 다른쪽을 치고 있을 때 문자를 봤다.

 

논술전형 합격 면접전형 안내.

 

오잉? 내가 논술에 붙었다고? 정말 생각없이 썼는데..

 

아 이러다 합격하는거 아냐? 두근두근거리며 인터넷으로 학교 정보를 검색했고 당시 교직원의 연봉은 내 초봉과 비슷했다. 지금에야 격차가 많이 벌어졌겠지만.

 

항상 칼출퇴근에 방학때는 단축근무!!

 

와.. 이런조건이 있었다니. 격주로 토요일 근무? 그것도 오전만?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학교 교직원은 어떤형태의 면접인지 그리고 어떤걸 물어볼지 알 턱이 없다. 인터넷에는 조만간 학교를 크게 확장한다는 기사가 있었고 그래서 사람을 충원하는가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일 하느라 바빠서 시간내서 면접 준비하고 그런것도 없었다..

 

또 어렵게 눈치를 보고 연차를 냈다.

 

제법 사람들이 추려져서 몇 안된다. 시설직은 열다섯명 남짓. 그 안에 건축 기계 전기 지원자들이 섞여있었다.

 

이름표를 받아 착용하고 대기했다.

두달여전만 해도 내가 면접 진행보조로서 면접자들을 안내했는데 이제는 내가 그 면접자가 되어 차가운 철제의자에 앉아 대기하다니.

 

내 차례가 되어 들어갔다.

 

삼대일 면접이었다. 기본적인 질문을 하다가 한명이 물었다.

 

"안전관리비 산출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설명해보세요."

 

!!!

 

잉?

 

"아 네.. 제가 공사팀에 있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면접관은 날 쳐다보더니

 

"우리학교는 원가개념이 있어야 하는데 건설회사 일년 좀 넘는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런거도 몰라요?"

 

모르지. 난 공구리만 치고 땅이나 팠으니.

아.. 기성사정 할때 보니 갑지에 경비 안전관리비 몇프로 써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공무에서 으례 조정해서 가는지라 나는 실 작업량 체크만 했었지..

 

어색하게 웃었다.

 

다른 면접관이 질문했다.

 

"백화현상이 대해서 말하고 대책이 뭔지 얘기해보세요."

 

눈앞이 캄캄해졌다.

 

백화.. 건축기사 공부할 때 조적조 건물에 케미컬 반응 어쩌구 저쩌구 해서 하얗게 흐르는거를 말하는거지.. 대책? 대책은 기사수준에 있었나. 하긴 나는 부랴부랴 기사를 기출문제 문답 외우고 해서 땄지..

 

떠듬떠듬 백화에 대해서 설명하고 대책을 조적 공사시 몰탈 밀실시공 그리고 규정된 보양진행과 올바른 조적 선택이라고 두리뭉실하게 얘기했다.

 

집이 먼데 출퇴근 가능하겠냐부터 항상 면접때마다 물어보는 술 잘먹게 생겼는데 주량이 어떻게 되냐 등 몇가지를 더 물어보고 면접은 끝났다.

 

나오면서 정말 허탈했다. 

원가라.. 원가라.. 안전관리비라..

 

시설직은 내가 하고 있는 시공의 범위랑도 많이 다르고 깐깐하구나. 그 영감탱이들 밑에서 일하는거보단 지금이 낫다라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 허허..

 

결과는 탈락.

 

좋은 경험이었다. 그냥 계속 이 일을 쭉 하라는건가.

 

벛꽃이 화드라지게 피었다. 특히 밤에 노란 가로등 아래로 묘한 핑크빛이 되어 흩날리고 춤을 출 때 내 맘도 덩달아 춤을 췄다.

 

섹스에 대한 욕구는 다희랑 잘 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길을 누군가와 손을 잡고 거닐며 얘기를 하는 플라토닉 감성이 필요했고 다희는 나와 데이트같이 나가서 걷고 어딜 가고 하는걸 좋아하지 않았다.

 

이제 전 여자친구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았다. 너를 보내기까지 오랜시간이 걸렸구나. 아파하고 속상해하고 한숨짓고 술먹고 그리워하던 그 날들.

 

친구를 통해 그 전 여자친구는 곧 결혼을 할거라 들었다. 학교 동료 선생님과.

 

잘가라. 그 동안 고마왔어. 찌질했던 나와 함께 사귀어줘서.

 

최대리는 팀장님 눈 밖에 나서 뭘 하더라도 쿠사리를 먹었고 박차장도 슬슬 이런 최대리에게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최대리는 뒤늦게 자기가 주도한 분위기가 이게 아님을 감지하고는 만회하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현장의 계약직들은 최대리에게 매우 비협조적이었고 조그만 최대리의 잘못은 비아냥이 되고 타겟이 되어 크게 부풀려졌다.

 

최대리는 내게 더 찐따를 붙고 잔소리를 더 심하게 했다. 만만한게 공채 후배더냐.

 

뭐 어쨌던 상관없다. 어차피 허드렛 일은 다 내가 하고 있었고 박차장도 나를 불러 작업지시를 하고 확인하는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현장에는 겹경사가 터졌다.

박과장이 기술사 시험 일차를 합격하고 면접도 잘 봤다고 했다. 그리고 그 동안 묵묵히 일하고 있던 조대리도 기술사 일차에 합격했다!

 

박과장은 워낙 공부한다고 운을 떼고 시작한지라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일차 합격한 것을 뒤늦게 사람들에게 알렸다. 면접까지 다 붙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일차만 합격해도 이년만에 면접만 통과하면 되는지라 공사팀 술자리에서 헤벌쩍 웃으며 털어놓았다.

 

모두가 와아.. 축하해요! 와아!! 하는데 구석에 있던 조대리가 묵묵히 있다가

 

"저도.. 이번에 필기 붙었습니다.."

 

하고 얘기했고 사실 우리는 엄청 매우 많이 놀랐다.

평소에 말도 없고 묵묵히 있던 조대리였기에.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와중에 최대리는 여지없이 고춧가루를 뿌렸다. 그거 필기는 아무나 붙는다 면접에서 죄다 떨어져서 아직 판단하긴 이르다며 되도않는 초를 치더라.

 

두 계약직 직원의 승보에 최대리는 너무나도 배가 아파했다. 아직 최대리는 기사 취득 후 사년이라는 최소 조건에도 들지 못했었기 때문이고 자기도 보면 한방에 붙는다고 별거 아니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런 최대리에게 박과장이 사실 SKY출신인데 집안사정 때문에 졸업은 못했다. 열심히 하는거 보이지 않느냐고 슬쩍 운을 뗐더니 아 그래? 하고는 담부터 박과장에게 과장님 이라는 호칭을 제대로 붙이기 시작했다.

 

니 안테나가 거기까지는 뻗치지 못했나보지?

 

조대리 또한 서울에 있는 사년제 대학을 나와 계속되는 면접에 실패하고 어쩔 수 없이 계약직으로 시작한 케이스였고 조대리가 더 대단한게 뭐냐면 딱 사년 채우고 바로 합격한 케이스였다.

 

그러나 여전히 말수는 없고 자기 할 일만 했다. 가끔있는 술자리는 꼬박꼬박 참석해서 묵묵히 듣기만 했고 그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그렇게 둘다 동타에 건축시공 기술사를 합격했고 박과장은 그 동안의 자기가 지내왔던 시절들이 서러웠었는지 술자리에서 취한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

 

팀장님이 어깨동무를 하며 위로를 해줬고 시커멓고 키 백팔십오에 등치도 있는 사람이 조용히 눈물을 흘리니 애처로웠으면서도 멋있었다. 인간극장 승리시대도 아니고 저 양반은 어찌 뭘 해도 저렇게 다 멋있냐.

 

조대리는 덤덤했다. 마치 원래 계획에 있었다는 듯이.

 

둘다 명함을 새로 팠고 특히 조대리 명함은 팀장님이 지갑에 고이 품고 다니던 그 명함처럼 멋있었다.

 

[조XX 대리 / 건축시공기술사]

 

아 나도 어서 경력 쌓아서 저리 되야지.

 

최대리는 그 후로도 여전히 촐싹대며 돌아다녔고 조대리가 계약직이고 건축시공 기술사임에도 여전히 자기보다 밑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고 조대리도 게의치 않았다.

 

박과장은 나름 정규직 전환에 기대를 가지고 있었고 팀장님도 이리저리 힘써봤지만 이 회사서는 진짜 바늘 구멍에 낙타 들어가기마냥 쉽지 않았다.

 

박과장은 그렇게 이직 준비를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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