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가다 22

딴돈으로 비아그라 사먹고 떡치러 가즈아~~~

나의 노가다 22

링크맵 0 2,137 2020.03.19 16:41
출처블라인드 건설엔지니어

인턴 김기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왔지만 꼴에 남자인지라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받았다.

 

저번에 말한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필기시험을 봤고 합격해서 면접보러 갈거라 했다.

그래. 아버지 빽은 면접부터 유효한가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꼭 그 회사를 욕하는건 아니고.. 채용비리가 크게 뻥 터졌던 회사이긴 한데 필기시험이건 뭐건 어느단계에서든지 빽이 있다면 조정 가능하다 했다. 근데 뭐 이건 어느회사나 다 비슷하니.

 

쓸데없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인턴 김기사는 나에게 일은 잘 되냐고 물었다.

 

아니.. 요즘 난 내가 뭘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잘 한다는 정의가 무엇인지 정신없이 바쁜데 이게 일 잘하는거라면 그렇노라 대답해주니 깔깔 웃는다.

 

그냥 생각나서 전화했단다. 자기는 교회오빠랑 잘 만나면서 지낸다고 했다. 근데 왜 전화질이야.

 

"그래서 말인데 선배.. 여자 소개시켜줄까요?"

 

자기 학교 동기인데 솔직히 자기보다 못생겼다고 했다. 대체로 이런 경우는 진실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솔로로 외로이 보내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옆에 있어서 사랑하지도 않는데 괜히 분위기에 휩싸여 육체적인 욕구를 분출하는 그런 상황이 될까봐 그것도 별로였다.

 

"나 눈 높아. 내가 생긴것도 잘생겨서 내 옆에는 모델같은 여자가 서 있어야 해."

 

인턴 김기사는 깍깍대며 웃었다.

 

선배는 가끔 그런 되도않는 말을 하는게 웃기다고 했다. 하 진짠데?

 

한번 생각해보고 생각있음 연락달라고 했다.

 

십일월 말경 첫 눈이 왔다.

 

이제 팔개월 좀 넘게 일했구나. 

눈은 현장을 하얗게 뒤덮었고 아니나 다를까 군대에서도 하얀 똥이라 불리던 그 아름다운 물체를 열심히 치웠다.

 

눈 치우는데 있어서는 박차장도 모라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도 빗자루를 잡고 열심히 치우더라.

 

쓰레기 줍는건 관리자 체면에 어긋나면서도 눈은 그렇지 아니한가.. 저 무슨 되도않는.

 

최대리는 전 직원이 구역을 나눠 열심히 눈을 치울동안 내가 그동안 본 것 중 가장 성의를 다 해 눈을 치웠다. 카... 비켜! 아 거기 거기! 짬순으로는 막내그룹에 속하는 그는 이리저리 다니며 솔선수범 주댕이로 눈을 치웠고 그 꼬락서니는 정말 꼴보기 싫었다.

 

그리고 독일에서 양놈 하나가 와서 ACS 조립을 감독했다. 최대리는 자기가 영어를 잘 한다느니 회사에서 보내는 연수에 곧 자기가 된다느니 학생 때  영어 연수 육개월만에 마스터를 했다고 했지만 인스펙터가 오니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물론 독일 아저씨가 영어를 잘 하지도 않고 그저 기계적으로 손가락질 하고 ACS 형틀팀을 불러 도면을 가르키고 직접 조이고 하면서 바디 랭귀지로 조립했다.

 

최대리는 독일 사람의 영어 발음은 내가 유학했던 미국에서는 잘 들리지도 않고 인토네이션이 안맞아서 대화가 안된다며 현장을 나가지도 않았다.

 

아.. 당시에 유행했던 미드가 있다. 밴드오브 브라더스. 일명 형제악단이라는 이 미드를 난 몇번이고 되돌려보며 좋아했는데 잘 기억은 안나지만 최대리는 에피소드 칠번에 나오는 다이크 중위와 같았다.

 

핑계대고 빽으로 최전선에서 뭘 하려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필드에서 용감한 스피어스 중위가 문제를 해결하는.

 

암튼 난 ACS 시공계획과 조립에 대해서 집중하고 싶어서 코쟁이 아저씨와 안되는 영어로 얘기하고 그래도 형틀팀보다는 내가 영어 한자라도 더 알기 때문에 중간에 통역도 해주며 시스템을 알아갔다.

 

코쟁이 인스펙터는 일공구와 이공구를 넘나들며 ACS 조립을 했고 일공구가 먼저 시작해서 마이너스 발판까지 전부 다 조립을 완료했다.

(아.. 참고로 편의상 ACS라고 부르지만 적용됐던 폼은 Dokka의 SKE 50과 100 발판이었다)

 

첫 자동인양을 한다고 해서 구경갔는데 엄청 신기했다.

 

"치이이이이 툭.."

 

한번에 거대한 발판 여러장이 약 사십센치에서 오십센치씩 올라갔다. 임기사와 나는 둘이 싱글벙글 웃으며 우와 우와 했고 독일출신 인스펙터는 그런 우릴 보고 흐믓하게 웃으며

 

도카넘버원을 외쳤다. ㅡㅡ

 

나중에 페리의 ACS Form을 써봤는데 둘다 장단점이 분명하고 호불호가 갈리는 시스템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페리가 가볍고 공간도 넓어서 짱이지만 철근배근에 있어서는 도카가 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기 때문에 도카도 무시할 순 없다.

 

암튼

 

코어는 폼 세팅이 되고 열선보양이 됨에 따라 점점 타설 싸이클을 줄여갔고 처음 십일 두번째 칠일 세번째 오일 네번째 사일... 텀으로 점점 하루씩 줄여나가며 원래 계획인 삼일 싸이클을 타기 위한 준비 중이었다.

 

철골도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서면서 하루종일 현장에서는 고장력볼트 임팩 때리는 소리가 다다다다닥 하며 시끄러웠고 건설현장에는 라이센스 용접공이 부족하기 때문에 용접사 기량시험을 준비했고 그 과정도 상세히 지켜봤다.

 

* 보통 용접사 자격증이 있으면 조선소나.. 중공업쪽으로 갑니다. 받는돈이 넘사벽.

 

바람이 자주 그리고 많이 부는 겨울이기에 용접하우스를 짜서 각 용접부위에 올려놓고 용접을 했으며 그때까지만 해도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었던 내게 검측을 위한 이동은 정말이지.. 너무 무서웠다.

 

추락방지망부터 안전로프까지 설치는 다 되어 있었지만 왜 그렇게 무섭던지.

 

그렇게 바쁘게 홀로 현장을 챙기고 있던 때 최대리가 말했다.

 

"야 김기사 오늘 저녁에 시간비워둬라. 저녁먹자."

 

별로 최대리랑 같이 저녁 먹고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공무팀장님이 고생한다고 사주는 자리라 해서 참석하기로 했다.

 

여섯시가 넘어서 박차장에게 최대리가 가서 쑥덕쑥덕 하더니 나를 데리고 자기차에 태워 어디론가 이동했다.

 

삼십여분을 달려 강남에 있는 유명한 고깃집에 도착했다. 이런데 비싼덴데 왜...?

 

가서 네명자리 세팅해두고 기다리니 공무팀장과 공무 김대리 둘이 들어왔다.

 

아.. 이거 공채모임인가.

 

직감했던대로 그런 자리였으며 뭐 저녁식사 자리는 나쁘지 않았다.

공무팀장님은 선비같았고 평소 큰 소리를 내지도 않고 항상 조용조용 얘기를 하셨다.

 

소주를 인당 한병반에서 두병정도씩 마시고 일어났다. 그리곤 조금 옆에 있는 룸싸롱으로 갔다.

 

헉.. 그 동안 강북에서 가 봤던 수준의 그런 룸싸롱이 아니다. 괜히 내가 강남이라 생각해서 그런가 모르겠지만 한자리씩 옆을 차지하고 있던 언니들도 세련되어 보이고 왠지 모르게 이뻐보였다.

 

최대리는 자주 가는 모양인지 실장과 매우 친해보였고 소위 지명이란 것도 있더라.

 

난 그저 묵묵히 듣는 쪽이었고 회사 얘기를 최대리와 공무 김대리 그리고 공무팀장이 했는데 난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겠다.

 

노래도 한곡씩 부르고 최대리가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팀장님! 앞으로 자주 이런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 네명이 이 현장을 무사히 잘 끝내리라 믿고 건배사를 하겠습니다!"

 

왜 이 네명이야. 여기 네명 말고도 다른 직원들 많은데.

 

최대리는 각자 파트너와 헤어지는 와중에 내 주머니에 몇만원 찔러넣었다. 원래 이차가면 다 끝나고 팁 조그맣게 주는거라고.

 

룸싸롱 복도에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 문 앞에 대기하던 벨보이의 안내로 방에 들어갔다.

 

방은 훈훈하게 데워져있었고 이런데가 첨인 나는 일단 침대에 앉아서 침을 꼴깍 삼켰다.

 

경험자 흉내를 내기보다는 솔직히 얘기했다.

 

"저 이런데 처음이거든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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