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루프라고 하던가...?
그 애와 난 또다시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번엔 내가 그 애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 애는 내 마음을 모르니 나에게 예전처럼 말을 걸수 있었지만
난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 애에게 말을 하고자 다가가면 그 애와 내 친구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는걸 차마 볼수 없었다.
그날 이후 난 의도적으로 그 애를 피하게 되었다.
그 애뿐만 아니라 친구와도 멀어지게 되었다. 가끔씩 그 애가 와서 요즘 왜 얘기를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냥 피곤해서 그렇다며 얼버무리곤 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되는것은 맞지만 난 때때로 그 애와 친구녀석이 빨리 헤어지길 바랬었다.
그러나 내 바람을 조롱하기라도 하듯 그 애와 친구는 점점 더 가까워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들이 헤어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수학여행을 갔을때 한번은 나와 그 애를 포함한 몇몇 애들이 진실게임을 한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 차례가 걸렸을때 애들은 당연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이 떨어졌다.
그 애도 답이 궁금하다는 듯 날 빤히 쳐다보았다.
"난 그 애를 좋아해..."
이미 마음속으로는 천번을 하고 또 한 말을 차마 할수 없었다.
그 애의 남자친구도 날 향해 궁금하다며 빨리 재촉했다.
난 씁쓸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그 애의 이름을 되뇌였다. 좋아한다 xx아. 널 1년전부터 좋아했어.
크게 말하지는 못하고 녀석들이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말한 후 좋아하는 애따위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날 밤 난 매점에 먹을 것을 사먹으러 가다가 그 애와 친구 둘이서 안고있는 모습을 보고 잠시동안 공허한 표정을 짓고
그 애가 날 혹시나 볼까봐 다시 사먹지 못하고 되돌아왔었다.
그 이후로 그 애와 난 점점 더 멀어졌다.
그 애와 내 친구가 가까워질수록, 그 애와 난 멀어졌다.
어느새 그 애와 내가 즐겁게 주고받았던 문자들은 점점 끊겼고 마침내 우리는 완전히 문자를 나누지 않았다.
정적으로 멈출것만 같던 시간은 흘렀다.
그 애와 난 어떠한 관계에 대한 발전도 하지 않고 졸업이라는 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던중 친구가 그 애에게 반에서 이벤트를 한답시고 옆반 애들까지 다 끌어모은적도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날 보며 다들 괜찮냐고 물었지만 난 애써 자는척하며 그 애의 모습을 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말도 없듯이 그 둘은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친구들은 지금이 기회라고 했지만 난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그 애와 난 이미 끝났다.
서로 같은 학교를 가는 사이도 아니었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고백하기엔 벌어진 우리의 사이가 너무 멀었다.
난 졸업이라는 남은 시간동안 그 애와 1년전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언제부터 졸업이 이렇게 가슴아픈 것이었던가.
그 많은 시간을 놓고도 그 애와 이렇다할 행동조차 취하지 않은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은 되돌리수 없는 것이었다.
난 결국 졸업전날 그 애에게 소심한 문자 한통을 보냈다.
-고등학교 가서도 공부 열심히 하고 잘 살아라ㅋㅋ-
답장은 오지 않았다.
답장이 오지 않은 그 문자 한통이 내 가슴을 후벼파는 듯 했다.
결국 오지않을 것 같던 졸업식은 현실로 다가왔다.
지루한 교장의 얘기가 끝나고 친구,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시간이 되었다.
난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한편으로는 그 애를 눈으로 찾았다.
그래도 마지막인데 그 애와 추억 한장쯤은 남겨놓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머지않아 그 애의 친구들과 사진을 찍는 그 애를 발견할수 있었다.
"야 쟤냐?"
형이 날 보며 말했다.
난 형에게 자랑하듯 맞다고 대답했다. 이젠 친구도 뭣도 아닌 사이면서 뭘 자랑스러워 했던 걸까.
"마지막인데 너가 좋아했던 애랑 사진 찍어야되지 않겠냐?"
"그래야지"
난 한껏 기대감을 갖고 그 애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하지만 그 애는 계속해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고 야심차게 핸드폰을 들고갔던 난 그 애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등을 돌렸다.
형에게서 욕이 쏟아졌지만 난 소심한 마음에 그 애에게 사진이란 말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결국 그 애와 그렇게 멀어졌다. 그 애가 제외된 반 사진 한장만을 남겨두고 나의 쓸쓸한 졸업식은 끝났다.
결국 나의 짝사랑은 드라마 따위와 달리 해피엔딩 같은건 없었다.
난 끝까지 그 애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으며 친구가 그 애와 사귀는걸 지켜봐야만 했다.
졸업한 후에도 한번 우연한 기회로 그 애를 다시 만난적은 있었다.
하지만 과거와 달라졌다고 생각했던 난 결국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채 또다시 그 애를 모른척 할수밖에 없었다.
전에는 좋아하지 않은 여자에게도 고백하다가 왜 그 애에겐 고백을 하지 못했냐는 말도 나올 것이다.
나에게 그 애는 다른 여자와 달랐다.
감히 집적대며 고백을 하면 안될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차여서 완전히 틀어지고 싶지 않았다.
만약 지금와서 다시 그 애와 만난다고 해도 그 애와 내가 잘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과거는 과거로 묻어둘때가 아름다운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