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9월군번이야.
혹시 그때 당시 통신학교 동기들 있으면 소름일 것 같아.
꼭 그 상황에 몰입해서 읽었으면 좋겠어.
참고로 모든 일은 내가 듣고 난 후 내 관점에서 쓴 글이야.
(1) 민병수 이병 이야기
논산훈련소를 마치고 육군통신학교로 배치를 받고 나서
약 20명정도의 동기들과 선임이 될지모르는 2~3주차 선임들과 함께생활하던 1주차 때였어.
하루에1명씩 22시이후 약 2시간?정도 당직사관(하사~상사)과 함께 컴퓨터앞에 앉아 뭣도 모르면서
그냥 잠을 안잔다는 개념으로 옆에 있던것 같아.
비가 천장을 뚫을 듯이 내리던 밤11시 쯤
빗소리에 묻히는듯 들리는 벨소리에 당직사관이 깨고
발신번호를 확인후 짜증나는 듯 표정을 짓고
목이 메였는지 헛기침을 몇차례 한 후 입을 열었어
"통신보안 통신학교 당직 김중사(편의상) 입니다.
어머님 또 전화주셨네요. 여긴 그런 아이 없습니다."
이게 무슨 대화인가.. 사건은 3주전으로 거슬러가
김중사가 당직근무를 서던 밤 11시경.
"우리 병수가 통신학교를 간지 일주일이 되도 연락이 안오길래 전화를 했어요.. 어찌된일인가요?"
김중사는 병수라는 아이가 집에 전화를 주지 않았던 모양이라고 생각했었대
실제로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없는 일도 아니였어.
후반기 교육인 통신학교는 전화,px,노래방,흡연 그 모든게 가능했고 자대에서 억제 받던 생활에 갓 벗어난
아이들 중 여자친구,친구에게는 전화를 해도 가족에게 연락을 늦게 하는 바람에 가끔 이런 전화가 왔던 모양이었어
"아 어머님 저희가 병수에게 내일 꼭 전화 드리라고 하겠습니다. 지금은 병사들이 취침중이라 전화를 드릴 수가 없어요
꼭 아침점호 후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라는 멘트 후 어떤새끼인지 자기에게 피로감을 주는 일을 만들어 이를 가는 듯 했다고 해
다음 날 병수라는 아이를 불러내니 이병수 김병수 이렇게 두명이 있었고 너네중 가족에게 연락 안한 새끼 있으면 당장 하라고 시간을 줬는데
이병수라는 아이가 전화를 안했었나봐. 죄송합니다 하고 바로 달려가더라고
3일후 당직을 맡게된 김중사에게 또 다시 전화가 왔어.
"저희 아들이 전화가 안와서 궁금해서 했어요 . 병수좀 바ㄲ..
"어머님! 병수는 전화를 드렸다고 합니다. 왜 자꾸 전화를 하시는지요 !"
"....뚝"
전화가 끊겼어.
다음날 병사들이 수업을 듣으러 가고 교육병으로 있는 병장에게 그얘기를 하니 상황을 알게됬어.
김중사는 모 군단 통신대대 소대장으로 있다가 통신학교로 온지 2주도 안된 상태였거든
"아 그 병수어머님 말씀이십니까? 전 소대장님도 엄청 골치 아파했습니다.
매일밤마다 그렇게 병수를 찾아대는데 그땐 병수라는 이름을 가진 병사가 해병대까지 포함해 한명도 없었습니다."
( 통신학교는 해병대 통신병까지 와서 교육을 받아)
알수 없지만 뭔가 싸한 기분이 들었대
이게 3주전 이야기였어 그 후로 당직 서는 날마다 그렇게 전화가 왔다는거야.
그 다음 당직 서는 날 김중사는 또 전화를 받았고 확실하게 대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대
"안녕하세요 병수엄마에요 "
"네 어머님 병수가 전화를 안드렸나요?"
"네 병수가 전화를 안하네요 통신학교 갔다고는 들었는데 일주일째.."
"어머님 병수 군번..아니 주민번호 아시죠 불러주시겠어요?"
"네 840128.."
' 83? 83이면 30살에 이병이라고?'
"네 어머님 일단 제가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병수한테 꼭 얘기 할게요"
대충 얼버무리고 끊은 김중사는 통신학교 정보수록창에서 병수라는 이름을 클릭 후 840128 을 썼어
첫줄엔 민병수. 정신 지체 장애가 있긴 하지만 군생활에 적극적으로 임함 이라는 훈련소 조교의 글과
그 밑에는 논산 훈련소 수료 후 수료식 가족만남 시간 때 몰래 외출 후 모텔 욕조에서 팔에 칼을 그어 사망
훈련이 힘들어서? 원하는 걸 못해서? 그 병사가 왜 죽었는지는 아직도 몰라.
김중사는 소름이 돋아 정신이 멍해 보였어.
씨팔..이게 뭐야 왜 죽은얘를 나한테 찾아 시팔..
이렇게 있다가 정신병에 걸릴거 같아 발신번호를 통화 한지 2시간만에 그대로 걸었더니
없는번호가 떴대 300건이 넘는 통화 기록이 있는데..
미쳐버리지.. 그 기록에 남은 어머님의 번호와 같았기 때문에 아버지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논산 수료식 후 후반기교육을 받기로 되있었는데 수료식때 맞벌이 하시느라 두분다 가질 못했대..
아들은 그렇게 죽고 어머님은 정신적 충격으로 일시적인 기억상실증에 걸렸는데
그 아들이 통신학교로 넘어갔을때로만 자꾸 기억이 돌아오는거였대
그래서 그렇게 매일같이 전화로 물어보는거였고..
김중사는 이렇게 슬픈사연이 있는데 어머님에게 모질게 대한게 너무 맘에 걸리고 한편으로는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린 느낌이 들어
어머님을 위로해주고 싶었대 어머님의 전화번호가 걸리질 않는다..매일같이 물어보시는데 위로라도 해드리고싶다라고 전해드리니
아버님이 병수엄마 최근 두달 전에 빈자리를 못버티고 자살하셨대 폰도 해제한지 한달이 넘는다는거야
3개월동안 꾸준히 걸려오던 전화 중 나머지 한달 통화의 목소리는 지금도 선명한데..
실제로 김중사와 같이 당직서던 동기들과 매일 얘기듣고 실제로 비오는날 자기 심정까지 다 말씀해주셨어
6.25전쟁때 통신학교 터가 대전국군병원, 신병교육소 등이라 공격이 잦았고 그만큼 시체가 많았대
이거 말고도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무서운 공포이야기들 많은데 간추려서 정리해서 다시 올려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