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밤에 잠도 안오고 해서 비참한 첫사랑 썰이나 푼다.
대학교2학년 때 같은 과 신입생을 좋아했다.
신입생 OT에서 처음 만났는데 스시녀처럼 상냥하고 다소곳하게 웃는 모습에 반해버렸음.
사는 곳도 비슷하길래 같이 등교도 하고, 이것 저것 챙겨주면서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근데 나 말고도 그 애를 좋아하던 복학생 형이 있었던 거임.
그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 나와는 점점 만남이 뜸해지더니 첫사랑은 결국 그 형과 사귀게 됨.
내가 그럼 그렇지하는 자조와 어차피 다음학기에 군대가야된다는 비겁한 자기합리화가 뒤섞인 채로
그 둘을 피해서 학교를 다녔음.
그 뒤로 군대를 다녀 오고, 복학을 하고 머릿속에서 그 애를 잊었다고 생각할무렵,
과 술자리에서 우연히 그 형을 다시 보게 됨.
아직도 그 애 만나냐고 물어봤더니 헤어졌다고 하더라.
이런 저런 얘기 하면서 술이 들어가다보니 얘기가 여자쪽으로 흐르게 됐음,
근데 이 형이 대뜸 자기가 아다 때준 여자 이야기를 꺼내더라고.
대상은 바로 내 첫사랑이었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술이 번쩍 깨더라.
한 때 내가 좋아했던 여자가 내가 아닌 아닌 사람의 품에 안겨 순결을 잃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도 아닌 당사자에게 들어야하는,그러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야하는 현실이.
나에게는 소중햇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한낱 술자리 안주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비참해서 견딜수가 없더라.
근데 더 화가 났던건 그 얘기가 끝나고 난 뒤에 그 형이 한 말이었음.
자기가 신입생 한 번 먹어보려고 돈을 얼마나 뿌렸는지 아느냐고.
알고보니 전역 한지 얼마 안된 시점이라 발정이 났던 이 형이 그냥 되는대로 찔러보고 다녔던 거임.
그 애뿐만 아니라 신입생 여자애들한테 술사고 밥사고,,,
혹시나 자기보다 먼저 마음에 드는 애 다른 애가 낚아갈까봐 뒷담화하고 훼방놓고...
그 와중에 그 애가 술에 취해버렸고, 그 애를 모텔로 데려갔다는 이야기....
그 얘기를 듣는데 힘이 탁 풀리더라
이제 집에 가야한다고 대충 얼버무리고 나오는데 살면서 그렇게 비참하고 무력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그 애를 좋아하고 있었구나
다른 것보다 그 애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지고, 무엇보다 저런 자식한테 첫사랑을 뺏긴 내 자신한테 너무 화가 났음.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볼걸, 조금만 더 다가갈걸 하는 후회와 자책들.
그 애가 날 좋아했다는 보장도 없고,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나와 잘될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그래도 병신같은 죄책감이 들더라.
몇년이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문득 문득 그 때 생각이 난다.
처음 만난 날 웃던 모습, 같이 등교했던 시간들, 같이 걷던 캠퍼스 그리고 그 순간을 지키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
긴썰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