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내가 초딩시절.
어렸던 나는 밤을 두려워 했다.
여고딩들의 웃음소리,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 모자를 쓴 키큰 남성... 이 모든게 무서웠다.
어느 날
난 원어민이 있는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단어를 안외워서 늦게까지 남았었다.
ㅈ고딩들한테 밤10시 까지 남아라 하면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겠지만, 초딩에게 밤 10시? 그건 엄청난 가학이었다.
10시 이후엔 차량도 운행을 안해줘서 부모님이 데려와야하는게 정석이지만,
하필이면 그 날 어머니께서 학부모모임에 가셨기 때문에 집에 계시던 할머니가 대신 데리러 오기로 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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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20분.
20분이나 지나도 할머니가 안왔다. 나는 초조한 나머지 내가 혼자 집을 가기로 결정하였다.
밤의 공기는 으스스했다. 초딩에게는 너무나 쌀쌀한 밤의 공기.
그리고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하였다.
"야 꼬마야 일로와보련?"
나는 뒤를 돌았다. 분명 밤인데 얼굴이 하얀 여성이 흰 이빨을 씩 드러내고 있었다.
그 여성의 뒤엔 자기 또래같아 보이는 여자 둘이 더 있었다.
"혹시 돈 있니?"
"네?"
"돈 있냐고 ㅋㅋ 똑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말구.."
"..."
난 태어나서 삥을 한번도 뜯겨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 삥을 뜯기게 되는 것인가...
"돈이 없어요.."
"그래? 있으면 1원당 1대~"
그 년은 씽긋씽긋 웃으면서 말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족치고 싶은 얼굴이다.
난 조금씩 울먹이기 시작했다.
뒤에 있던 빨간색 패딩입은 년이 말하였다.
"야 어린애 삥뜯지 말고 가자 뭐하는 짓이냐"
"ㅋㅋㅋ 돈도없으면 조용히 해. 이시간까지 학원다니는 초딩들은 부모님이 항상 용돈준다고 ㅋㅋ"
"불쌍하지도 않냐?"
"좀 닥쳐~"
아.. 왜 이 앞에있는 년은 친구의 말을 무시하는지...
"빨리 내놔 우리 시간없으.."
그 년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어디선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야이 년들아!!"
우리 할머니였다.
할머니께서는 당신의 손으로 산악용 아이젠을 휘두르셨다.
80세의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허벅지, 정강이, 팔을 타격하는 할머니를 보며, 나는 경외감을 느꼈다.
"아니 씨... 미치셨어요?"
"그래 미쳤다 이년들아! 감히 우리 손주를 건드려?"
할머니께서는 젊은 여자들에게 기가 안눌리셨다.
"야 그냥 가자.. 똥밟았네 에이씨"
여자무리는 싸울 의욕을 잃었는지 도망쳤다.
"손주 괜찮아?"
"왜이렇게 늦게왔어 으아앙아앙아앙엑윽엑엑!"
"미안혀.."
그 당시 겉으로는 투정을 부렸지만, 속으로는 할머니가 매우 자랑스러웠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할머니. 다시 보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