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때 친구 아버지가 교회를 오픈했다고 해서
구경도 할 겸 주말에 친구 몇 명이랑 같이 갔다.
보기에도 신설 교회인 게 눈에 확연히 들어올 만큼 깔끔했음.
그렇다고 건물이 대성당처럼 크거나 하진 않았는데,
1층이 예배당이었고, 2층이 쉼터? 같은 곳이었음.
나는 딱히 종교 같은 걸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 처음 종교를 믿고 싶다는 의지를 가졌었다.
믿음의 원인 제공은 친구 교회 피아니스트 누나였는데,
중학교 3학년인가? 나보다 두 살 즈음 많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내가 두꺼운 성경책 페이지를 못 찾아서
그 누나가 친절하게 성격책 페이지 찾아주면서
"나도 처음엔 잘 못 찾았어"
하면서 반달 모양 눈웃음 짓는 거 때문에 순정했던 내 마음이 끌렸었다.
키는 나보다 조금 컸었는데, 얼굴도 작고 새하얀 피부랑 각 잡힌 단발머리가
내 눈에는 너무 예쁘게 보였다.
콩깍지가 예고도 없이 쓰여 버린거지.
첫 주, 둘째 주, 셋째 주,
그 누나랑 둘이서 이야기도 나누고,
고민 같은 것도 거리낌 없이 주고받았다.
그때까지는 그 누나도 나를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고
어린 남동생 정도의 선을 지키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돌아오는 주말에 그 누나한테 고백하기로 마음먹음.
머리털 나고 처음 이성에게 고백할 용기가 생긴 거지.
그래서 익숙하지도 않은 성격책 펼치고 복음인가 볶음인가
하루 종일 음독하면서 예수님한테 기도했었다.
'누나랑 사귀게 해주세요. 메이플 아이디 가지셔도 좋으니까, 제발요.'
이 지랄하면서 플라스틱 십자가 목걸이 어루만지면서 기도했음.
그리고 결전의 날이 다가왔음.
나는 수련회 갈 때 보다 더 세련되게 옷을 입고 갔었는데,
그 누나도 깔 맞춤인지 엄청 예쁜 원피스를 입고 왔더라.
그래서 예배 끝나고 점심시간에 그 누나랑 밥 먹으면서 슬쩍 떠봤음.
"누나, 하나님은 정말 존재하는거죠?"
"그럼.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셔."
하나님 버프 받고, 바로 고백을 했지.
"누나.. 제가 누나를 좋아해요."
순간, 그 누나 동공이 물 풍선처럼 계속 커지더라.
나는 부끄러워서 그 누나 얼굴 곁눈질하면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누나가 벌떡 일어나더니 식판을 들고 가버렸음.
'어? 어?? 왜 저러지?'
존나 당황해서 그 누나한테 가서 왜 그러냐고 물었는데
떼쓰는 아기 교육하는 엄마처럼 냉정하게 말하더라.
"너, 내 이름은 알아? 모르잖아?
내가 너를 좋아하는 마음이 없는데, 너랑 사귀어야할 이유가 없잖아?"
와 시발 진짜 무슨 혓바닥에 버퍼링 한 번 안 걸리고 팩트로 조지더라.
나는 존나 얼 타면서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 재생했다.
이후 그 누나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음.
나는 성경책과 십자가를 교회에 반품했고,
다시는 종교와 신을 믿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음.
지금 그 누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면상에 북두칠성 여드름 그린 신원미상 호빗 중딩 새끼가
밥먹다가 고백하면 나 같아도 손절할거 같긴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