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가다 18

딴돈으로 비아그라 사먹고 떡치러 가즈아~~~

나의 노가다 18

링크맵 0 711 2020.03.17 21:32
출처블라인드 건설엔지니어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박차장을 찾았다.

혹시 박차장도 이 기초철근 사이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건가..?

 

위를 올려다보니 상부근 사이로 희미하게 번뜩이는 눈이 보인다.

 

"이리 나와!"

 

박차장은 나보고 빨리 나오라고 소리쳤고 난 뒤뚱뒤뚱 철근을 밟으며 개구부로 갔다.

 

하얀색 쓰레기 봉지를 한손에 쥔 후 사다리를 뒤뚱뒤뚱 올라가 다시 쓰레기 봉지를 상부근에 올려놓고 완전히 올라간 다음 쓰레기 봉지를 집고 노란색 메쉬발판으로 올라가 살짝 빠른 걸음으로 박차장 근처로 간 후 박차장 근처로 다시 상부근을 뒤뚱 뒤뚱 밟고 갔다.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리는 나의 여정을 박차장은 차가운 눈으로 보고 있었고 박차장에게 걸어가면서 왜 저럴까 내가 뭐 잘못했나... 라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너 지금 뭐하냐?"

 

"예 기초 청소 중이었습니다."

 

"그걸 니가 왜 해? 그렇게 너는 일머리가 없어?"

 

하 참. 지가 내 두손 두팔 다 짤라놓고선 저런다.

우물쭈물하고 있자 한마디 더 한다.

 

"일 잘한다고 그러더만 이거 순 다 뻥 아니야? 누가 너보고 그런짓 하래!!!"

 

박차장의 사자후에 순간 모든 작업들이 정지되고 시선은 우리에게 향했다.

참 골고루 쪽이란 쪽은 다 주는구나...

 

"일을 이과장에게 배웠어? 그러니 이딴식으로 일하지! 현장의 관리자란 놈이 어디 잡부 하듯이 쓰레기를 줍고 다녀? 미쳤어??"

 

다른건 다 참아도 이과장 욕을 하니 욱 한다.

그래도 한때 호흡 맞추며 재밌게 했고 비록 술먹으면 진상이지만 그래도 이공구가 여기까지 오게 된것은 이과장의 역할도 엄청난데 사람 없다고 너무 막말하는 것 같다.

 

"... 업체에게 시켰지만 다들 사람 없다고 하고 뭔 말만하면 차장님이 시키신거 하느라..."

 

"뭐?"

 

박차장은 나의 말을 단칼에 끊고는

 

"내가 시킨 일 때문에 너 말을 안들어?"

 

우물쭈물 네.. 라고 대답하자 박차장이 말했다.

 

"하... 너 신입이니까 내가 한마디만 할께. 내가 여기 부임받아오니 모든게 엉망에 제대로 돌아가는게 없어서 다시 잡느라고 너를 볼 시간이 없었다는건 내가 인정할께. 글구 솔직히 내 짬에 너한테 이래라 저래라 그러기도 세대차이 나서 그러고 싶지도 않아. 근데 기사라는 놈이 현장을 주물러야 하는 놈이 뭐? 고참이 시킨것 때문에 사람들이 말을 안듣는다고 핑계를 대?"

 

박차장은 지 나름대로 날 설득하려 들었지만 솔직히 하나도 안들렸다.

 

뭐가 그리 엉망이란 말인가... 라는 문구만 머릿속에서 맴돌았고 내가 그동안 해왔던 일 자체가 다 부정되는 것 같아서 그리고 이과장의 존재가 아무렇지도 않게 희석되는 것 같아서 앞에 서 있는 박차장이 악마처럼 보였다.

 

박차장은 그 뒤로 뭐라고 더 말했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고 아이씨 걍 이거 때려치자. 뭔 내가 이런거 하려고 여기서 이 고생을 하고 있냐 울컥 하는 속상함이 저 밑에서부터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고 애써 울지 않으려 행복한 시간을 떠올렸다.

 

여자친구와 함께 즐겁게 얘기하던 그 때.

같이 노량진역 앞에 있는 김밥천국에서 김밥 하나씩 입에 먹여주며 우리 앞으로 결혼하면 이렇게 저렇게 아웅다웅 살자라며 하하호호거리던 그 때를 떠올렸는데 더 서글퍼져서 눈물 한방울이 나도 모르게 주르륵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꼴을 보던 박차장은

 

"하... 이거 완전 또라이네?"

 

하면서 그딴식으로 할 거면 때려쳐! 라고 또다시 사자후를 내뿜었고 이성을 앞서 감정이 지배하던 내 몸뚱아리는 알겠다고 대답한 후 성큼성큼 사무실로 걸어갔다.

 

뒤에서는 박차장이 야! 김기사!! 너 뭐하는새끼야!! 빨리 안와!! 라고 소리쳤고 난 분노로 가득찬 채 이 처량한 내 신세가 너무 서러워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며 가설계단으로 갔다.

 

누가 뭐라하던 지금의 난 너무 초라하고 작다.

싫다 이런 내가.

 

게이트 b 밖으로 나가 서글퍼진 나의 맘을 부여잡고 구석에 좀 앉아있었다.

 

그 동안 친해진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며 어머 김기사님 안녕하세요! 라며 지나갔고 난 아무렇지도 않은 채 네 안녕하세요! 라고 웃으며 답을 했지만 내 몰골은 엉망이었고 감정을 소비하고 나니 배가 고프다.

 

좀 걸어 호떡을 하나 사먹고나니 이제서야 이성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야.. 김기사. 너 어떡하려그래?

 

아 몰라 나도. 내가 이런 취급받으면서 일하는 것도 지쳤고 지금 나의 상황은 최악이야. 여자친구랑도 헤어지고 인턴 김기사도 박차장이 온 후로 얘기도 잘 못 나누고 일은 일대로 병신처럼 소외되서 이러고 있고..

 

호떡을 마저먹고 콜라 하나를 사 먹었다.

캬... 탄산이 속으로 들어가니 시원하다. 좀 있음 눈도 온다는데 난 이번 크리스마스는 혼자 쓸쓸히 지내겠지.

 

이제 현장에 다시 가서 나의 스탠스를 어케 잡을 것인가 고민했고 뭐 고민한다고 뚜렷한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다시 게이트를 통과하여 사무실로 올라가는데 밑에를 보니 전 작업자와 직영 심지어 업체 직원까지 하나같이 다 기초 밑에 들어가서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박차장은 기초 철근 위에서 지도자처럼 우뚝 서서 걸어다니며 앞으로 빵조가리 이런데서 먹지 말라고 샤우팅 중이었다.

 

칫. 당신이니까 그런게 가능하지 당신이 이렇게 만든 나는 그저 조그만 돌맹이야. 이리채이고 저리채이고.

 

사무실로 들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 앉았다.

 

작업일보를 쓰던 인턴 김기사는 나를 쳐다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선배님.. 박차장님이 선배님 보면 현장으로 빨리 오라고 연락왔었어요.."

 

눈이 뚱그래져 나를 쳐다보며 말했고 난 꼴에 남자라고 쎈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어. 알어. 나 관둘꺼야."

 

인턴 김기사는 눈이 갑절은 더 커져서 나를 쳐다봤고 정말요? 진짜로? 하며 확인하려 했다.

 

묵묵히 앉아 있다가 에라 모르겠다. 육개월 넘게 이렇게 했으면 뭐 많이 한거 아닌가. 때려치자 라는 생각을 가지고 신발을 갈아신으려던 때 박과장이 나를 불렀다.

 

박과장과 탕비실에 가서 자리에 앉아 얘기를 했다.

듬직한 형처럼 느껴지던 박과장은 묵묵히 듣더니

 

"그래 김기사. 무슨 말인지 다 알겠다. 그런데 그렇다고 여기서 집에 가 버리면 넌 진짜 이 일을 그만두게 되는거고.. 어렵게 입사한 이 회사가 아깝지 않겠나?"

 

뭐 여기 아니면 갈데 없겠어요. 정 안되면 설계사무실을 가면 되죠라고 말했고 박과장은 그걸 듣더니 한마디 했다.

 

"김기사. 너의 마음은 알겠지만 사회생활 하면서 부딪히는 무수한 난관들을 이런식으로 회피하려 하면 안돼. 그리고 이 회사를 어렵게 들어와서 제발로 나간다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는 것 같다. 그 동안 잘 해오다가 이런식으로 도망가버리면 너무 아깝지 않나?"

 

박과장님은요 제 맘 몰라요. 박차장이 어떻게 했는지.

 

박과장은 니가 정 그렇다면 너 스스로 준비 다 했던 기초만이라도 치고 다시 생각해보라 했다.

자기는 너가 지금 그만둬도 뭐 내가 아니기 때문에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현장의 큰 이벤트 하나를 니 스스로 했으면 한다. 그만두더라도 기초는 끝내고 그만두는게 좋지 않겠냐 했다.

 

곰곰히 듣다가 그래 까짓꺼 이번 기초만 치고 관두자. 내가 그래도 저거 할라고 어떻게 노력했는데.. 라는 생각을 가지고 알겠노라 했다.

 

다시 군장을 차고 현장을 쫄래쫄래 나갔다.

 

가설계단을 내려가 노란색 메쉬발판을 따라 걸어서 다시 철근 위로 뒤뚱뒤뚱 걸어 박차장에게 다가갔다.

 

걸어가는 중 밑에를 보니 개미새끼 하나 없얼 정도로 청소가 진행 중이고 나를 쌩깠던 업체 직영 반장도 열심히 푸대자루에 쓰레기를 담고 있다.

쌤통이다.

 

박차장은 다가오는 나를 못 봤는지 그렇게 서 있었고 난 다가가서 말했다.

 

"차장님 죄송합니다.."

 

박차장은 나를 힐끗 보더니

 

"청소 싹 다하고 올라와."

 

하고는 사무실로 걸어 올라갔다.

 

마치 자연스레 평지를 걷는듯한 박차장의 걸음걸이를 보며 캬.. 노가다 짬밥 무시 못하는구나. 난 잘 못 걷겠던데 저양반은 철근위를 어쩜 저리 편하게 걸어다니지.. 라는 생각만 들었다.

 

청소가 마무리 되고 진짜 개미새끼 한마리도 없을만큼 다 완료된 후 옆구리에 껴져있는 결재판을 들고 감리실로 가서 검측 요청을 했고 이부장은 설렁설렁 따라 걸어내려왔다.

 

"이야 내가 지금까지 본 기초배근 중 오늘 기초배근이 최고다. 청소도 그렇고 완벽하구마잉"

 

합벽쪽의 사시낑이 좀 틀어진 거 그리고 코어 주근에 비닐보양해서 타설 시 공구리가 묻지 않게 하는거와 철근 결속을 지시하고는 철근공들이 다 수정할 때까지 묵묵히 지켜보던 이부장은 그래서 내일 기초타설하나? 물었고 난 그렇다고 답했다.

 

이부장이 올라가고 마치 폭풍이 분 마냥 고요한 이 상황에 나른해졌다.

 

목수는 아직 망치질을 하며 기초 옆면을 합판으로 막고 있었고 철근공 몇이 남아 철근을 결속했다.

 

사무실에 가서 박차장 얼굴을 어떻게 다시 보지..

 

저 멀리 토목이사와 검측을 끝낸 인턴 김기사가 나를 보고 낑낑대며 기초철근 위로 올라왔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눈치가 구단인지라 박차장과 나와 뭔 일이 있음을 직감하고는 조용히 물었다.

 

"응 아냐.. 넌 검측 잘 끝났니?"

 

인턴 김기사는 내가 누군데! 하며 씩 웃으며 검측요청서 갑지의 감리 싸인을 보여줬고 우리도 이제 기초를 치는건가요? 라고 물었다.

 

응 뭐.. 그런거 같애.

 

간단히 답하고 내일 기초 타설을 위한 직원 미팅 시간이 되어 올라가자고 하고 같이 올라갔다.

 

인턴 김기사 앞에서 나도 박차장만큼 잘 걷노라 보여주고 싶었지만 서툴다. 인턴 김기사도 어기적 어기적 나를 뒤따르고 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사무실로 올라갔다.

 

회의실에 직원들이 모여 박차장이 브리핑을 했다.

 

오.. 파워포인트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표와 배치 그리고 현장 사진 및 동선까지 깔끔하게 표기된 장표를 보자니 인간이 달라보인다.

 

깔끔하게 그리고 젠틀하게 브리핑을 끝냈다.

 

박차장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를 불러 물량확인 펌프카 확인 기타 등등 타설 준비사항을 체크했고 박차장의 청소로 인해 검측도 일찍 끝났고 내일 고생할테니 오늘은 일찍 들어가고 내일 두시까지는 나와서 준비하라 했다.

 

"차장님 죄송합니다.."

 

박차장은 그런 나를 보고

 

"에이그 이런 븅신새끼.."

 

라며 나중에 얘기하자 하고는 소장님실로 들어갔다.

 

일공구 기초칠 때 임기사는 밤을 새서 준비했건만 나는 지금 이 시간에 들어가도 되는지 이게 맞는지 모르겠고 박과장은 얼렁 들어가라고 내 등을 떠밀었다.

 

집으로 가면서 생각했다.

 

그래 내일 기초를 치면서 임기사처럼 기초철근 위에서 살고 하면 모두가 알아주겠지.

 

임기사의 공구리가 튀어 범벅이 된 모습이 떠올랐다.

 

얼굴에까지 튀어 이건 뭐 공구리공인지 직원인지 분간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그 모습.

 

집에가서 누으니 아홉시다.

 

원래 지금 시간이면 슬슬 정리하고 나올 때인데 집에 누워있으니 조그맣게라도 행복하다.

 

하.. 나도 얼렁 짬밥먹었으면... 얼렁 나도 좀 일을 잘했으면... 박차장 장표 진짜 깔끔하다... 생긴건 시커멓게 생겨서 그런거도 잘 하네.. 하 노가다 하는 사람들은 왤케 다 시커멓고 늙어보이는걸까... 나도 몇년후면 저렇게 변하려나.. 그러고보니 군대에서 행보관이 오십줄은 되 보였는데 나중에 서른아홉이란 말에 깜짝 놀랐었지.. 하... 

여자친구는 지금 날 생각하고 있으려나...

 

스르르 잠이 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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