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섬에 대한 중국 정부의 야심찬 ‘일국양제’실험은 끝내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 사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앞줄 가운데)이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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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홍콩 선거제 개편안이 통과되지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 베이징
AFP
연합뉴스
홍콩섬에 대한 중국 정부의 야심찬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실험은 끝내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
중국 당국이 지난해 7월 홍콩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에 이어 홍콩 입법회(국회) 의원들의 애국심 심사, 홍콩 선거구제 개편, 홍콩 학교에 중국 홍보책 세트 배포 등 일련의 작업을 통해 홍콩의 민주주의 체제를 완전히 지워버린 것이다.
홍콩 교육부는 일선 각급 학교에 내려보낸 회람을 통해 한 세트에
48
권으로 구성된 중국어 그림책 시리즈 ‘내 집은 중국에 있어’ 배포 계획을 지난
22
일 밝혔다.
이 그림책 시리즈는 중국 정부가 홍콩 학생들의 애국심을 고취할 목적으로 만든 중국 홍보용 책자다.
교육부는 회람에서 “이 책 시리즈는 중국 역사와 문화 교육을 향상하는 보조 교재로 활용할 수 있다”고 홍콩 자유언론(
HKFP
)이
23
일 보도했다.
케빈 융(楊潤雄) 홍콩 교육부 장관은 중국 관영 통신사 중국신문사(中國新聞社)와의 인터뷰에서 “홍콩은 중국의 일부분이고 모든 홍콩인은 이 나라의 시민”이라며 “모든 홍콩인은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린 홍콩인들의 애국심 고취를 위해 교재를 활용해 헌법과 기본법, 홍콩보안법과 같은 중요한 가치를 제고해 왔다”고 덧붙였다.
중국 광둥(廣東)성 정부 소유한 출판사가
2016
년 펴낸 이 책은 중국 도시와 축제, 호수와 바다, 소수민족, 산과 강, 길 등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국의 세계화 전략에 따라 영어와 러시아어, 라오스어로 출간됐고 현재 스페인어 버전이 제작되고 있다.
HKFP
는 “일각에서는 중국 본토 관리들이 애국심 육성을 강조하면서 홍콩 교육 현장이 점점 정치화되고 있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 그림책 시리즈 ‘내 집은 중국에 있어’ 세트. 중국 정부가 홍콩 학생들의 애국심을 고취할 목적으로 만든 중국 홍보용 책자다. 중국신문사 제공 연합뉴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상무위원회는 앞서 지난해
11
월
11
일 오전 홍콩 의회인 입법회 의원들에 대해 ‘애국심’을 의무화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입법 의원들에 대한 애국심 의무규정이 신설됨에 따라 홍콩 정부가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의원들의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SCMP
)는 지적했다.
SCMP
는 이 결의안에서 중국 정부가 규정한 애국심은
1984
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정한 ‘중국에 대한 존경, 중국의 홍콩에 대한 통치권 회복 지지, 홍콩의 번영과 안정을 해치지 않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콩 정치평론가 소니 로는 “야당 의원들에게는 협조하거나 아니면 입법회에서 쫓겨나는 것 밖에 다른 선택지가 없게 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 경우 우리는 입법회가 향후 친중국 의원들로만 채워지는 시나리오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우려는 즉각 현실화됐다. 홍콩 정부는 이날 오후 곧바로 관보를 통해 중국 전국인대 상무위의 결정에 따라 입법회 의원 앨빈 융(楊岳橋)과 궉카키(郭家麒), 데니스 궉(郭榮?), 케네스 렁(梁繼昌) 등 4명에 대해 의원직을 박탈한다고 발표했다.
이들 네 의원이 홍콩의 독립을 주장하고 외국 세력과 결탁해 국가안보를 해쳤다는 이유로 자격이 박탈됐다고 홍콩 정부는 그 배경을 설명했다.
홍콩에서 선거에 출마하려면 선거관리위원회의 후보 자격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선관위는 해당 후보가 홍콩 헌법인 ‘기본법’을 지지하고 홍콩 정부에 충성하는지 등을 심사해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홍콩 선관위는 이에 앞서
16
명의 민주파 후보들에게 ‘충성 질의서’를 보내 이들이 지난해 미국을 방문해 미 관리와 의원들에게 ‘홍콩 인권·민주주의 법’(홍콩인권법) 제정을 촉구한 것 등을 빌미로 의원직 자격을 박탈해버린 것이다.
홍콩 독립을 지지하거나 외국에 홍콩 정부를 제재해 달라고 호소했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홍콩 입법회 의원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케네스 렁, 앨빈 융, 궉카키, 데니스 궉.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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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모자라 중국은 홍콩 선거제도 개편했다.
지난
11
일 폐막한 중국 전국인대는 홍콩 행정장관 선거인단에 입법의원 지명권을 부여하고, 출마자의 ‘애국심’을 평가하기 위한 공직 후보자 자격 심사위원회를 신설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홍콩 선거제도 완비에 관한 전국인대 결정’을 통과시켰다.
전국인대에서 찬성
2895
명, 반대 0명, 기권 1명으로 ‘완벽하게’ 의결된 선거제 개편안은 ▲공직 선거 출마자의 자격을 심사하는 고위급 심의위원회 설치 ▲행정장관 선거인단
1200
명에서
1500
명으로 확대 ▲입법회 의원
70
명에서
90
명으로 확대하는 것 등이 핵심 내용으로 담겼다.
이런 만큼 이번 홍콩 선거제 개편안의 초점은 공직 선거 출마 자격을 정부 당국이 심사하고, 행정장관 선거인단에 시민이 선출하는 몫을 줄이는 것에 맞춰진 것으로 해석된다.
선거인단에서는 기존 구의원 몫
117
석에 대한 언급이 누락되는 바람에 시민들이 선출한 몫이 선거인단에서 빠진 것이다.
홍콩 정가에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부분은 그만큼 축소되고 중국의 직접 통제는 강화된 셈이다.
홍콩인들이 직접 선거로 뽑는 선출직 입법회 의원들도 줄어들 전망이다.
현재 입법회 의원 중 절반인
35
명은 홍콩 시민이 직접 선거로 뽑고 나머지는 직능 단체 간접 선거로 선출한다.
하지만 개편안에서 입법회 의원은 선출직, 직능대표 선거, 선거인단 선거 등 세 가지 방식으로 뽑는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각각 몇석씩 배분할 것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게다가 앞으로는 친중 성향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선거인단도 입법회 의원 일부를 선출하도록 했다.
직접 선거로 뽑는 의원 비율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반중 성향인 홍콩 야권이 입법회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더라도 홍콩 의회를 좌우할 수 없다는 뜻이다.
홍콩 언론들은 홍콩 선출직 의원수가 현재의
35
석에서
20
석으로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점쳤다.
레지나 입(왼쪽 두번째) 신민당 주석을 비롯한 홍콩의 친중 의원들이 지난
11
일 홍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의결한 홍콩 선거제 개편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홍콩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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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홍콩 선거제 개편의 최종 목표는 내년 3월로 예정된 홍콩 행정장관 선거를 일체의 잡음없이 치르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친중 후보가 행정장관 선거에서 무난히 압승을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중국 당국이 홍콩 선거제를 개편한 것이다.
즉 행정장관 선거인단에서 반대파가 설 자리가 없도록 선거인단 수와 구성을 변경하는 작업을 했다는 얘기다.
이에 홍콩 야권은 선거제 개편으로 친중 인사만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된다면 일국양제에 종말을 고하고 홍콩의 민주주의가 고사 위기에 처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19
방역조치에 따른 4인 초과 집합금지 명령과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야권과 시민사회의 반발이 물리적으로 표출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지난해 7월 이후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100
여 명이 체포된 데 이어 당국이 공직 선거 출마자의 자격을 심사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선거제 개편이 이뤄지면서 홍콩 범민주진영은 손발이 묶이는 상황에 부닥쳤다.
SCMP
는 홍콩 제1야당인 민주당과 제2야당인 공민당을 비롯해 범민주진영이 중국의 잇따른 조치에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전했다.
더욱이 지난달
28
일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공민당 소속 정치인 5명을 포함해 범민주진영 인사
47
명이 범민주진영 인사
47
명이 무더기 기소되면서 홍콩 야권에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고 야권에서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후보군 자체가 심각하게 쪼그라들었다.
특히 기소된
47
명 중 앨빈 융 전 주석을 포함해 4명의 공민당원이 법원에서 보석 심리 도중 공민당 탈퇴를 선언했다.
공민당 소속 레티샤 웡(黃文萱) 구의회 의원은 “당 해체 논의가 있다”고 털어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로킨헤이(羅健熙) 민주당 주석의 일과에는 범민주진영
47
명이 기소된 이후 구치소를 방문해 구속된 동지들을 만나는 일정이 포함돼 있을 정도다.
로 주석은 “매일 줄타기를 하고 있다”며 “나는 내 발언이 법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확신하지만, 어느 날 당국이 내 발언을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고 우려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81&aid=0003174199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이 ,, 무섭네요